본문 바로가기
세상돋보기

또 청첩장이야? 세금고지서 같네!

by 카푸리 2008. 11. 7.
반응형
가을이라 그런지 유난히 결혼사람들이 많습니다.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는 것처럼, 최근 들어 청첩장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지난 9월에 3장, 10월에 4장, 이번 달 들어서는 벌써 2장째 받았습니다. 청첩장 받는 심정 솔직히 세금고지서 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자식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이 다음에 다 돌려받을 것이란 생각으로 축의금 꼬박 꼬박 내는데, 낸 만큼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도 됩니다. 뭐, 돈이야 형편대로 내면 되지만 주말마다 결혼식장 가느라 남들 다 하는 단풍구경 한번 못하고 이번 가을 다 보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첩장 받고 결혼식장 가보면 '내가 왜 왔나?' 하는 후회감이 들때가 많습니다. 접수창구에 축의금 봉투 내밀고 나면 식권 하나 줍니다. 그러면 결혼식 참석도 안하고 바로 직장 동료나 아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뷔페식당으로 가서 밥 먹고 의기 투합되면 거기서 거나하게 낮술도 한 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냥 밥만 먹고 바로 오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일가 친척이나 직장 상사의 자제 결혼식이면 하릴 없이 결혼식까지 참석하고 두루 두루 인사와 눈도장도 찍은 후에 밥을 먹으러 갑니다.

요즘 청첩장 오면 최하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씩 나갑니다. 지난 9월에 20만원, 10월에 30만원, 이번달도 벌써 2건인데 20~30만원은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요즘 경기도 안좋은데 청첩장 받으면 가슴이 뜨끔 뜨끔합니다. 집사람은 뻔한 월급에 물가도 많이 올라 살림하기 힘들다며 매일 바가지 긁어 대는 통에 축의금 나간다고 손 벌리기도 사실 무섭습니다.

어제 사무실로 온 청첩장을 받고 보니 요즘 결혼풍속도가 이젠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옛날에는 워낙 못살아서 자식 결혼시키려면 목돈이 필요해 일가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돈을 보태 결혼식을 도와 주었습니다. 먼저 시집, 장가가는 집부터 도와 주고 나중에 도움을 받는다는 일종의 '계'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처럼 못사는 시대도 아니고, 예식장에서 결혼식 시키면 결혼식장과 뷔페식당만 좋은 일 시키는 것 같습니다. 별로 차려진 것도 없는데 웬만한 뷔페식당 가면 1인당 3~5만원입니다. 호텔은 10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그래서 축의금 5만원, 10만원 내고 부인과 같이 밥먹으려고 식권 2장 받으면 눈치 엄청 받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혼주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객이 온라인으로 돈만 많이 부쳐주고 뷔페 식권은 축내지 않는 하객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결혼식이던 장례식이던 축하와 위로를 해주러 가는 건데, 언제부터인가 얼마를 내야할 지에 대해 고민하며 세상 눈치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형편대로 계란 한꾸러미, 쌀 한되, 옷감 1마 등 되는대로 축의금 대신 현물도 냈습니다. 그리고 저 결혼할 때만 해도(1988년) 축의금 대신 벽시계, 장식함 등 선물도 꽤 들어왔는데, 요즘은 선물은 일체 보이지 않고 오직 돈봉투 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0분만에 끝나는 일반 예식장의 결혼식 장면. 신랑 신부보다 예식장과 뷔페식당을 위한 결혼식 같다.)

결혼식을 꼭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해야 하나요? 하긴 뭐 돈 많은 사람들은 으리 으리한 별장을 빌려 화려한 야외결혼식을 올린다는데, 호텔결혼식도 못시켜 주면 안된다며 딸이 철 모로는 소리할 땐 가슴이 뜨끔 뜨끔 합니다. 저도 예식공장(예식장)에서 나온 부부지만 30분 결혼식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서 이담에 결혼 50주년이 되면 푸른 잔디가 있는 야외에서 턱시도와 드레스만 차려 입고 부부가 나란히 금혼식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객은 가족, 친지 몇 명만 초대할 겁니다.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이트 운영자 고도원씨는 지난달 10월에 아들(고대우) 결혼식을 치루면서 청첩장, 축의금도 없이 치루었습니다. 양가 친척들만 모여 조촐하게 그러나 매우 따뜻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치루었다는 아침편지를 받았었습니다. 대기업 회장들이나 일부 연예인들이 축의금 없이 결혼식을 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고도원씨는 돈이 많아서 축의금을 안 받은 것이 아닙니다. 결혼식 그 자체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결혼식이 가능했습니다.
저도 농담으로 아내에게 우리 딸 결혼식 때 축의금 받지 않고 양가 친지들만 모시고 조용하게 치루면 안되겠냐고 하니까, "그럼 그동안 우리가 낸 축의금은요?" 하면서 눈에 불키고 달려 듭니다.

성당이나 교회, 공원 등에서 가족, 친지들만 초청해서 간소하게 하고 결혼식을 하면 뭔가 부족한 겁니까? 축의금 받아 봐야 어차피 야금 야금 다시 내어줄 돈입니다. 공돈이 아니라 빚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전 축의금 안받고 안주기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지금까지 제가 낸 축의금이 아깝지만, 그래도 저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축의금 액수와 하객수를 가지고 사회적 지위와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잘못된 시선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축의금 내라는 청첩장은 계속 올 것 입니다.

어제 퇴근 무렵 회사로 온 축의금 봉투를 보니 솔직히 조금은 짜증도 났습니다. 이번 달은 직장 상사 1명, 그리고 먼 친척 조카벌이 결혼을 합니다. 어차피 단풍도 다 지고 했으니 결혼식장 가서 마누라와 함께 가서 싫컷 먹고, 본전이나 뽑고 올랍니다.  낙엽 떨어지듯 계속 오는 청첩장, 잔인한 가을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