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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6.24 대한제국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묘 by 카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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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대한제국의 흥선대원군 하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저는 역사 시간에 배웠던 쇄국정책(鎖國政策)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한문으로 자는 쇠사슬, 자물쇠, 잠금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쇠사슬처럼 꼭 닫는 정책을 말합니다.

1884년 퍼시빌 로웰이 촬영한 고종 최초의 사진(사진 Wikiwand)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처럼 살아서와 달리 그는 죽어서 왕릉이 아니라 일반 묘에 잠들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무덤은 능()과 원(), ()로 구분하는데 능은 왕과 왕비의 것, 원은 세자 시절에 죽은 왕자와 세자빈, 그리고 왕의 사친(왕의 부모지만 본인들은 왕이나 왕후가 아닌 경우)의 것이고요, 묘는 나머지 왕실 가족의 무덤입니다. 흥선대원군 무덤은 묘가 아니라 이 되어야 하는데 평가절하되어 가 된 것입니다. 권력무상을 느끼게 합니다.

얼마 전 남양주시에 갔다가 흥선대원군묘 안내판을 보고 무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니 막다른 길에 철문이 닫혀있는 게 보였습니다. 분명 안내판대로 왔는데 어디지? 하면서 보니 철문 옆에 흥선대원군 묘라는 표지석이 있네요. 철문은 자동차 출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철문 옆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철문에서 흥선대원군 묘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 무작정 길을 따라갔습니다. 길옆에는 봉평 메밀밭처럼 하얀 꽃이 피어있습니다. 같이 갔던 아내에게 물어보니 망초대 꽃이라고 하네요. 초록으로 물든 길이라 아내와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갔습니다.

초행길이고 나무가 우거지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금방이라도 숲속에서 멧돼지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입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몰라 조금 불안했습니다. 아내가 무서워하기에 뭐가 무섭냐고 했지만요, 사실 저도 속으로는 살짝 겁났습니다.

10여 분 걸어 들어오니 드디어 무덤이 보입니다. 철문에서 무덤까지 안내판이 없는데요, 저처럼 초행인 사람을 위해 중간에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맞게 찾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묘소는 왕릉과는 다르게 소박해 보였습니다.

묘소 앞에 흥선대원군 신도비가 있습니다. 거북이 등에 올린 신도비는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조금 마모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쪽은 총탄 자국도 선명합니다. 파주에 묘가 있던 6.25 한국전쟁 당시 흔적이라고 하는데요, 신도비를 그대로 옮겨와서 상흔도 그대로입니다. 역사 문화재기 때문에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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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로 올라가 보려는데 흥선대원군 묘를 설명하는 안내판과 그 오른쪽에 한문으로 국태공원소(國太公園所)’라고 쓴 비석이 있습니다. 국태공은 흥선대원군을 말합니다. 묘소 안내판을 보니 흥선대원군 묘는 원래 1898년 고양군 공덕리(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1908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하면서 흥원으로 격상됐습니다. 그리고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습니다. 흥선대원군 묘지만 흥원으로도 불립니다. 이하응은 죽어서 잠자리를 두 번이나 옮겨 남양주에 잠들어 있습니다. 부인 순목대원비와의 합장묘입니다.

묘역은 2단입니다. 상단은 봉분과 상석(床石)이 있습니다. 하단에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 양석(羊石) 등 석물이 있습니다. 묘소 주변으로 돌담이 둘리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곡장(曲牆 : 무덤 뒤에 둘러친 담장)이라고 합니다. 곡장 때문에 묘소가 아늑해 보입니다. 왕릉보다 검소한 묘지만, 곡장까지 있는 것을 보니 왕은 아니지만, 왕족의 무덤으로서 갖출 것은 어느 정도 갖췄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선대원군 묘소 위에 올라가서 보니 초록이 시원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남양주시 창현리 일대가 아스라이 보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도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예쁜 곳이라도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죠.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죽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히 쉬고 있습니다.

흥선대원군 묘 오른쪽 계단 위에는 이하응의 증조부 낙천군 이온(李縕, 1720~1737)을 비롯한 직계가족 8명의 가족묘가 납골묘 형태로 있습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묘들을 이곳에 이장하여 한꺼번에 모아두었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호평과 악평이 있는데요,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떠나 돌고 돌아 남양주시에서 편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진 않습니다. 만약 이하응이 섭정을 했어도 선정을 펼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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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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