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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돋보기

30년만에 전당포를 다시 찾은 이유

by 카푸리 2008.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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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아버지께서 제 학비때문에 애지중지하며 차고 다니시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러 가실 때 아버지따라 전당포를 들어가 본 이후 30년만에 전당포를 찾았습니다. 어릴 때 전당포는 돈이 없을 때 시계나 패물 등 귀중품을 맡기고 잠시 돈을 빌려 쓰는 참 좋은 곳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식들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입학금 마련에 안간힘을 쓰다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어머니의 금반지 등 패물은 물론, 끝내 어머니의 재산목록 1호였던 브라더미싱까지 내놓고 자식들 공부시키던 때가 바로 엇그제 같은데, 제가 지금 전당포를 찾으니 많은 회한이 밀려옵니다. 아버지 따라 전당포를 찾을 때 이 다음에 훌륭하게 커서 전당포에 물건 들고 오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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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아버지를 따가 갔던 전당포를 다시 찾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결국 다시 찾게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어머님이 갑작스럽게 쓰러지셨습니다. 법 없이도 사실 만큼 농사만 지으시며 자식들 키우고 살아오신 어머님은 이제 나이도 연로하셔서 병이 없어도 힘드신데, 췌장암까지 얻어 서울 큰 병원에 입원을 해야했습니다. 우선 어머님을 모시고 올라와 서울의 종합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시키고 나니 병원에서는 수술을 당장 할 수는 없고 너무 쇠약하셔서 당분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응급실에 계신 어머님 얼굴을 보니 자식들 키우느라 이젠 뼈만 남으신 당신의 몸이 다 제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당장 병실 입원비와 항암치료비 마련이 걱정이었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큰 돈을 벌지 못하고 한달 한달 근근히 살아가는 저로서는 당장 몇십만원의 돈 마련도 쉽지 않은 처지입니다. 카드도 늘상 현금 한도를 넘어서 사용하고 있고, 은행 대출도 집을 살 때 빌린돈과 아이들 학원비와 학비 등으로 대출 한도는 이미 차버린지 오래입니다. 옛날처럼 회사에서 가불이란 것도 할 수 없어 고민 고민을 하다가 어제 동네 전당포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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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돈이될 만한 물건을 찾아보니 이 다음 아이들 결혼할때 기념으로 준다며 아내가 남겨둔 아이들 돌반지 6개(4돈), 아내의 금목걸이(5돈), 아내와 제가 끼고 다니는 결혼반지(6돈), 일제 디지털 카메라 1대... 그 이상 눈 씻고 찾아봐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입원비와 병실비 등 우선 50만원 정도를 마련해야 했기에 어제 오후에 전당포를 찾아 갔습니다. 금반지 몇 개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전당포를 찾아가니 옛날처럼 쇠창살 안에 빠꼼하게 주인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가지고간 물건을 주인에게 꺼내 놓았습니다. 주인은 물건을 보더니, 혹시 장물이 아닌가 하고 저를 위 아래로 훓어보았습니다. 기분이 무척 나빴지만 꾹 참았습니다. 물건을 맡기고 제가 받은 돈이 55만원이었습니다.  그돈을 받고 전당포를 나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루륵 흘렀습니다.

아내는 생활고에 어머님 병원비까지 대야 하는 형편을 알고, 당장 식당일이라도 다시 나서겠다고 합니다. 3년전까지만 해도 보험설계사 일을 다니며 생활비라도 벌었는데, 제가 남자 자존심에 그만두라고 했는데 이젠 식당일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만큼 절박한 입장이 된 것입니다.

경기가 좋으면 회사에서 연말 상여금이라도 받아 아버님 병원비라도 해결할텐데, 회사 사정도 안좋아 연말 상여금은 커녕 실직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나이에 만약 제가 실직당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과 불안감이 저를 짓누르고 있지만, 해고되지 않기 위해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우리 가정의 유일한 생명줄이고, 밥줄이기 때문에 이 줄마저 놓치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입니다. 회사에서도 늘 무언가에 쫓기듯 생활하다 보니 저 또한 위장병, 위괘양으로 약 없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점점 쇄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알면 걱정할까 약도 회사에서 주로 복용하고 집에서는 속이 쓰려도 참고 지내고 있습니다. 결혼후 가정과 회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금은 막다른 골목에 선 기분입니다.

어제 맡긴 전당포 패물은 변제 기간이 3개월이라 하는데, 3개월후 맡긴 패물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더 맡길 물건 찾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경제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듯, 저희 가정 또한 지금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힘을 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희망의 빛조차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아내는 결혼할 때 제게 받은 반지를 지금까지 한번도 손가락에서 빼지 않았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치 않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그 약속의 증표마저 빼앗긴 아내의 가슴은 뻥 뚫린 듯 했습니다. 못난 남편이라는 자괴감에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항암치료를 받으실 어머님이 고통을 잘 참아내실지도 걱정이고, 아이들은 갑작스런 할아버지 병환에 조금 놀라는 기색을 보였는데 공부는 잘 하는지, 이런 저런 걱정속에 능력 없는 이 시대 가장의 하루가 무겁게 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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