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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돋보기

지하철 풍경, '100원이라도 도와주세요'

by 카푸리 200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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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버스를 타면 때가 많이 묻고 닳고 닳은 듯한 종이를 승객들에게 나눠주고 버스 한가운데 서서 "저는 어릴적 조실부모한 후 길가에 버려져 청량리 고아원에서 3년간 지내고~~" 라며 종이에 적혀진 내용을 암기해서 도와달라고 하던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모두가 어렵던  그 시절에 버스 승객들은 형편대로 동전도 주고, 지폐를 주기도 하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한동안 이런 풍경을 보기 힘들었는데, 최근 지하철에서 자주 보고 있습니다. 예전 학교다닐 때 보던 것과 같이 지하철 승객들에게 안내문을 나눠주는데, 내용은 오래전에 봤던 내용과 유사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면서 이런 사람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제 퇴근길에 만났던 사람은 어찌된 일인지 지하철 객실내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도와달라고 합니다. 외모로 봐서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데, 사지가 멀쩡한 신체 건강한 남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왜 구걸을 할까' 할 정도로 아무런 장애도 없는 사람인데, 아니나 다를까 승객들은 이 사람의 외모를 보더니 한결같이 외면해버렸습니다. 저 역시 몸 건강한데 왜 무슨일이든 못할까 하는 생각에 도와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도와달라며 나눠준 안내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내용은 옛날과 비슷합니다.

저 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에 있는 사랑의 집에 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라의 집이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집 있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 없는 아이들은 지금 19명이 사랑의 집에 남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원장님과 선생님도 떠나가 버린 지금 저희들은 ○○○전도사님께서 돌봐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생활 형편이 너무나 힘이 들어 저희들은 이렇게 달리는 차에 올라와 도와달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겠습니다. 저희들을 친자식으로 생각해주신다면 이 다음에 커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지금까지 도와주신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하고 기도하면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0원이라도 좋으니 도와주세요!


요즘 지하철에는 구걸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차비가 없다는 것을 빙자해서 돈을 달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얼마전에는 퇴근하려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급한 듯이 제게 말하더군요.

"저기요, 제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런데 죄송하지만 차비 5천원만 주시면 안될까요?"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아주머니 행색을 보니 말쑥합니다. 그런데 회사 동료로부터 이런 사람이 지하철에 요즘 많다는 얘기를 들은바가 있어, 제가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제가 지하철 표를 끊어드릴께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정부까지 간다고 얼버무려서 제가 "의정부까지 표를 끊어준다"고 하자, 그 아주머니는 "됐어요"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지하철에서 요즘 유행하는 신종 사기수법입니다.

경제가 어려워 모두들 힘들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더 열심히 일하고 한푼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은 하기 싫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3D업종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얻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눈을 돌려보면 조금 힘든 일이지만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힘든 일은 기피하다 보니 일자리에 눈에 띄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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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힘든일은 피하고 편하게 일해서 돈을 벌고자 한다면 일자리는 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시민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무료 점심을 나눠주는 것도 혹자는 노숙자들을 양산할 뿐이라고 합니다. 하루 한끼 얻어먹고 공원이나 지하철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편'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때 청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도 많은데, 사지 멀쩡한 사람들까지 손을 벌리는 바람에 이런 사람들까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 있고, 또 어려운 경험을 한 사람도 많기 때문에 아직 우리 사회는 온정이 많습니다. 이런 온정을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교묘히 이용하는 세태가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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