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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좋아

신지애, 눈물젖은 빵의 골프신화를 쓰다

by 카푸리 200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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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가 어제(한국시간) 미국에서 열린 웨그먼스 LPGA 에서 2위권을 무려 7타 차로 따돌리며 우승했습니다. LPGA 진출후 올들어서만 벌써 2승째며 통산 5승을 거두었습니다. 신지애는 우승상금 30만 달러를 더해 총 100만1139달러의 상금을 기록, 올 시즌 처음으로 총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하며 상금랭킹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신지애는 개인적으로 상금왕보다 신인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은퇴한 소렌스탐을 대신해 우리는 신지애를 얻었다." (뉴욕타임즈) 신지애는 운동을 떠나 가난을 이겨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는 골프 천재, LPGA의 미소천사로 불립니다. 가난과 눈물을 머금고 오직 골프에만 전념해 한국을 넘어 이제 세계적인 골프 여제 자리를 향해 거침없이 나가고 있는 그녀에게 골프는 곧 삶이고 인생이었습니다. 특히 역경을 딛고 일어선 골프여왕이기 때문에 피겨의 김연아선수만큼 우리 국민들에게 큰 감동과 눈물을 준 자랑스런 선수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골프는 돈과 시간이 있는 사람만이 치는 사치스런 운동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골프를 한 것은 오직 가난을 떨쳐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지애에게 골프는 매 경기가 인생의 승부였습니다. 그 승부에서 그녀는 강한 정신력과 승부욕, 성실함으로 한국 여자 골프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집 장녀로 태어난 신지애가 골프를 친 것은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인의 골프연습장에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신지애를 데리고 갔는데, 공을 너무도 잘쳐 연습권을 끊어주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연습한 후 연습삼아 나간 주니어골프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 하면서 신지애의 골프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는 박세리가 세계를 제패해서 골프바람이 불때입니다. 박세리의 1998년 US오픈 우승을 지켜보면서 신지애는 골퍼로서 꿈을 키워온 이른바 '박세리키드'입니다. 가난 때문에 국가대표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2002년 바로 프로로 전향을 했습니다.

프로 데뷔후 그녀의 각종 진기록들이 쏟아집니다. 2006~2007년 시즌동안 33개 대회만에 통산 상금 1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정일미가 99개 대회에서 쌓았던 종전 최다 상금 기록 8억 8천여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입니다. 상금왕 뿐만 아니라 다승왕, 최저타수상, 최우수선수상 등 국내 대회 모든 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녀가 가는 길은 국내 여자골프계의 ‘최초’ 역사가 되었습니다.

프로 전향 3년만인 지난 2008년, 그녀의 나이 스므살 때 LPGA 투어 브리티시 오픈에서 첫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했습니다. 한국 무대를 뛰어넘어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3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우승기록은 박세리가 세웠던 대회 최연소 우승기록마저 갈아치웠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여섯 번째 LPGA 메이저대회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브리티시 우승뿐만 아니라 미즈노 클래식, ADT챔피언쉽에서 우승하며 비회원으로서는 처음으로 3승을 기록했습니다.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는 눈부신 활약으로 신지애는 올해 LPGA에서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신지애는 거칠 것이 없이 세계 골프계의 ‘지존’ 자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초년 시절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두 동생들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병원 간이침대에서 기거하면서 동생들을 간호하며 새벽 5시면 일어나 골프채를 휘둘렀습니다. 가난과 어머니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후 고등학생 소녀 신지애는 눈물로 하루 10시간씩 골프공을 쳤습니다. 남들처럼 비싼 사설 골프아카데미, 대회참가, 해외 전지훈련, 개인레슨 등은 꿈도 못꿨습니다. 슈퍼땅콩 김미현도 키가 작지만, 신지애의 키 156cm는 골프선수로는 유리한 조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오히려 어떤 역경속에서도 자신을 다스려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키워주었고, 이것이 신지애선수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가난과 어려운 여건속에서 연습을 꾸준히 한 끝에 스므살 되던 해인 2008년 드디어 메이저대회인 LPGA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후 신지애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먼저 떠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 보이시죠? 제가 해냈습니다. 어머니의 딸 지혜가 세계 대회 우승을 했습니다.” 그녀는 브리티시 오픈 4라운드를 앞두고 “우승하면 그 영광을 돌아가신 어머님께 돌릴 것”이라고 했는데, 그 약속대로 우승을 차지 했습니다. 신지애에게 하늘은 곧 어머니였습니다. 그린위에서 그토록 냉정한 승부사의 기질을 보이던 신지애선수는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는 골프지존이 아니라 한 어머니의 평범한 맏딸이었습니다.

신지애는 ‘파이널 퀸’이라고 부릅니다. 국내 투어 우승가운데 역전 우승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만큼 신지애의 정신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정신력 때문에 그녀는 다 진 경기도 뒤짚는 무서운 뚝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신지애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아 ‘미소천사’로 불립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신지애는 아기와 같은 웃음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또한 어렵게 자라온 시절을 생각해 매년 1억원씩 소녀소녀 가장,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있습니다. 미소천사 뿐만 아니라 기부천사이기도 합니다.

올해 LPGA에서 벌써 2승을 거두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신지애의 놀랄만한 일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녀는 애니카 소렌스탐과 오초아를 넘어 세계 골프계의 지존으로 우뚝 서기위해 오늘도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골프공을 치고 있습니다. 그녀가 치는 골프공은 머지 않아 세계 역사의 될 것입니다. IMF때 박세리선수가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면 신지애선수는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에 부활의 신호탄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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