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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돋보기

실직하면 지하철에서 물건 팔지도 몰라

by 카푸리 200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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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회사로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기름값이 많이 내렸지만 차도 막히고 운전하고 다니기엔 회사일이 너무 힘들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낮에는 좀 한가하지만 출퇴근 시간엔 그야말로 지옥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서민들에게 지하철은 발입니다.

어제 낮에 거래처일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물건을 파는 아줌마가 들어왔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 이웃에 사는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객실 가운데서 쭈뼛 쭈뼛 하더니 물건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작고 지하철 소음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3분여간 상품 설명을 한후 물건 몇개를 들고 객실을 돌며 승객들에게 권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끄럽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일부 승객들은 불쾌한 표정입니다.


경로석에서 머리를 뒤로 기댄채 잠시 눈을 붙이던 60대 후반의 노신사 한분은 아줌마의 상품 설명 소리에 짜증이 났는지 '에이~ 시끄러워' 하면서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러자 가뜩이나 자신감도 없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던 아줌마는 개미목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설명했습니다. 안그래도 시끄러운 지하철에서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릴리가 없습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하철 역무원에게 발각되면 못팔게 하기 때문에 물건을 갖고 지하철에 들어올 때 간단한 짐처럼 꾸려서 들어올 것입니다. 하루종일 지하철에서 그들이 객실마다 6~7분동안 상품 설명과 승객들에게 물건을 보여주며 판매하는 것은 그들에겐 생업입니다. 하루 종일 그들이 지하철 승객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버는지 모릅니다. 제가 보았던 그 아줌마처럼 사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나서는 것은 웬만해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선 창피함도 있을 것이고 또 물건을 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을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들이 많아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분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낮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물건 파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양말, 스카프, 욕실용품, 고무줄, 1회용밴드, 좀약 등 생활 필수품들이 대부분이지만 물건에 대한 신뢰성 때문인지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들이 통상 파는 물건 값은 5천원 미만 제품이 많습니다. 가장 많은 것이 1천원~2천원짜리입니다. 천원짜리 물건 하나 팔기도 힘든데, 한개 팔아서 얼마나 남는지 모르지만 하루 수입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렵고 회사 사정도 어려워 '내가 만약 실직하면 뭐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질 않습니다. 자영업도 다 문닫는 형편이고, 또 설사 한다 해도 자본금도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노점상이나 트럭행상 정도입니다. 사실 요즘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분들을 볼 때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나도 어쩌면 저 일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언제 실직할지 모르는 공포 때문입니다.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을 흔히 잡상인이라고 합니다. 잡상인의 '잡'은 불법,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이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직업의 귀천이 없듯이 그들에겐 생업입니다. 하루 1개를 팔든, 10개를 팔든 아침에 물건을 가지고 나올 때는 오늘 하루의 장사운을 생각하며 소음과 먼지 날리는 지하철에서 똑같은 상품설명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물건을 팝니다. 그들의 모습이 눈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요즘 제가 실업공포가 심한가 봅니다.

잡상인이라고 하지만 누구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하철에서 물건 팔려고 마음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하철까지 나와 물건을 팔 때는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태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최근 지하철에서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겁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대동강 물도 풀리듯이 우리 경제도 봄꽃이 활짝 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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