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동이'에서 장희빈(이소연)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 숙종의 마음은 '그 목숨만은 내 손으로 거두고 싶지 않았어...'라고 했지만 장옥정에게 내린 첩지를 거두고 사약을 내렸다. 장옥정은 동이에게 세자를 지켜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기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흔 셋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조선 숙종조에 바람같이 살다간 '장옥정' 얘기는 사극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1971년 1대 장희빈 윤여정을 시작으로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등 당대 가장 뛰어난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장희빈역을 맡았다. 그런데 장희빈은 늘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사약을 마시고 처절하게 죽어가는 '사약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장희빈이 마치 사약을 마시고 죽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만약 사극에 나오는 대로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면 이는 타살이다.


장희빈은 1701년 10월 10일 43세로 죽었다.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자진(자살)이라고 돼 있지만 '연려실기술', '인현왕후전'은 사사(사약)로 돼 있다. 자진과 사약은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사극에서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고 죽는 것은 극적인 재미를 위해 연출한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진실일까?

이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숙종실록을 찾아봤다. 일반인이 한문으로 된 조선시대 사료를 보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한글로 된 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으로 서비스되고 있어서 쉽게 관련자료를 볼 수 있었다. 우선 숙종 35권, 27년(1701 신사 청 강희 40년 ) 10월 8일(신유) 11번째 기사를 보자.

(이조판서) 이여가 말하기를,
"자진(自盡)하라는 교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의(賈誼)가 ‘고귀한 대신에게는 또한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유사(攸司)의 형벌을 이와 같은 곳에 시행하기에는 어려울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사약(賜藥) 이외에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


위 기록을 보면 신하들이 사약을 내리는 것이 불가하다고 말렸지만 숙종은 장옥정에게 사약을 내린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제 동이 55회 내용과 같다. 즉, 형식은 자진(자살)이지만 실제로는 사약을 내려 죽인 것이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숙종 60권, 43년(1717 정유 / 청 강희 56년) 7월 19일(신미) 1번째 내용도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내용이 있다.

왕세자에게 청정할 것을 명하다. 불행하게도 신사년에 인현왕후가 승하하여 동궁(東宮)이 의지할 곳을 잃었는데다 장씨(張氏)마저 죄로 사사(賜死)되었기 때문에 처세가 더욱 위의(危疑)스러워짐에 따라 보호하던 대신(大臣)들은 모두 유찬(流竄)되었다.

그런데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죽지 않고 자진(자살)하였다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숙종실록 27년 10월 10일 2번째 내용이다. 숙종의 입에서 장옥정이 자진했다고 말한 것인데, 여기서 자진이란 사약을 받고 죽은 후의 얘기다. 즉, 장옥정이 사약 이외의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아니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장씨(張氏)가 이미 자진(自盡)하였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상장(喪葬)의 제수(祭需)를 참작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장옥정은 자진(자살)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숙종에 의한 타살이다. 숙종의 입에서 장옥정이 자진했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사약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넌센스다. 사극 '동이' 등에서 나오는 장옥정의 '사약신'은 숙종실록 기록을 보면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장옥정의 죽음이 자살인가, 타살인가 여부는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타살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역대 사극에서는 장희빈이 '사약신'에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려던 모습만 보였는데, 이번 '동이'에서는 순수히 사약을 받아들였다. 비록 정치적 희생양으로 죽음에 내몰렸지만 숙종을 향한 사랑만은 순수했고, 그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모습을 '동이'에서 제대로 그린 것이다. 사실 그동안 장희빈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돼 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인현왕후 중심으로 기록되다보니 장옥정은 천하의 악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장희빈은 중인이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간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동이(한효주)와 대립각을 세우며 권력 다툼을 벌이던 장옥정은 역사적으로는 인현왕후(박하선)를 모해한 죄로 사약을 받았지만, 사극 '동이'에서는 동이와 연잉군을 시해하려한 죄로 사약을 받았다. 역사와 드라마는 다르겠지만 장옥정은 조선 숙종시대 정치적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두 여성은 단순히 숙종의 여인이 아니라 남인과 서인 각파가 벌이는 권력 쟁탈의 상징이었다. 권력과 함께 두 여인의 운명은 부침했고, 그 과정에서 두 여인들은 권력의 희생양으로 혹독한 업보를 만들었다. 장옥정은 자신의 업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사약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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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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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습니다 2010.09.28 09:3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실록 어디서도 세자의 어머니면서 한때는 왕비였던 희빈 장씨가 그렇게 극악스러운 발악을 하면서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반항과 발악의 기미라도 있었으면 노론의 기록으로 점철된 실록에 언급이 되지 않았을리가 없고요. 희빈 장씨와 그 일가가 어질고 현명하며 왕실의 모범이었다는 얘기도 없지만,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오바를 지어낸 것은 드라마의 영향이 크지요. <동이> 드라마 전편이 오바스럽지만, 적어도 희빈 장씨의 죽음에 대한 묘사만은 담담하게 하지 않았나 합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한번 가보고 싶은 시대기는 합니다.

    • 장희빈이 발악한 것은... 2010.09.28 09:55  수정/삭제 댓글주소

      야사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인 걸로 압니다.
      야사에선 장희빈을 아주 극도로 악랄하고 표독스런 여자로
      그리고 있죠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의 교씨도 다를 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