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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리뷰

동이, 천박하고 경망스러운 숙종?

by 카푸리 201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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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숙종은 어떤 왕이었을까요? 조선 제 19대 왕으로 재위 기간이 1674년부터 1720년까지니까 46년간 조선을 다스린 왕이네요. 14살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올랐지만 탁월한  지도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경험 많고 노쇠한 신하들을 한 손에 휘어잡고, 왜란과 호란으로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 유림의 거두 송시열을 제거하는 등 강력한 정치를 펼친 무서운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극 ‘동이’에서 보는 숙종(지진희)의 모습은 좀 다르네요. 숙종은 지난주 4회 엔딩 부분에서 암행 때 첫 등장했습니다. 어제 5회부터 숙종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는데 그 모습은 한마디로 경망스러운 왕이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정통 사극에서 봐오던 왕들은 하나같이 엄하고 점잖고 무거운 포스로 나왔는데, 이런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뜨린 게 ‘동이’에 나오는 숙종입니다. 퓨전 사극도 아닌데, 숙종역을 맡은 지진희는 한편으로는 무거운 사극 분위기를 깨는 임금으로 기대를 모으게 하고 있습니다.


동이가 궁궐도 들어간 지도 어느새 6년이 지났네요. 6년 동안 동이는 장악원의 천덕꾸러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비가 되었습니다. 동이는 장악원에서 밤늦게 해금을 켜다가 암행을 갔다 오던 숙종 눈에 띄었습니다. 숙종은 내관에게 해금을 켜던 동이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내관들이 근무태만 때문인지 동이를 쉽게 찾지 못하네요. 동이를 찾지 못하는 것은 장악원으로 동이를 데려온 황주식(이희도) 때문인데, 노비 신분인 동이가 장악원 악기를 만진 것을 알면 황주식의 목숨 부지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임금을 위해 연주하는 악기를 노비가 만지면 큰 사단이 났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동이보다 톡톡 튀다 못해 빵 터지는 숙종의 행동거지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숙종은 내관에게 하루 스케즐을 보고 받으며 궁궐을 지나가다가 궁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손을 흔들며 ‘어 그래, 별일들 없지?’ 하고 반갑게 하이파이브까지 합니다. 역대 사극에서 이런 쿨한 왕을 보셨나요? 무슨 회사 사장이 직원들 대하는 것 같습니다. 임금의 하이파이브 인사에 궁녀들은 뒤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데, 지엄하신 왕이 행차하시는데 감히 궁녀가 웃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이병훈PD가 정통사극의 대부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숙종역을 아주 파격적으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숙종의 파격적인 대사는 마치 개그처럼 느껴지는데요. 임금의 뒤를 따라가며 주요 국사를 보고하던 신하의 말에 숙종의 농이 빵 터지게 했습니다. 신하가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捲堂, 성균관 유생들이 행하던 일종의 동맹휴학)이 장기화되고, 지방의 유생들까지 합세한다고 하자, 숙종은 몰려온 유생들이 수백이라고 반문한 뒤, 신하들에게 농을 던집니다. “근데, 임금을 만나러 왔는데 설마 맨손으로 온 건 아니겠지? 저들(성균관 유생)이 진상품으로 뭘 가져왔는지 알아보게...” 이 말을 듣고 수행 신하가 깜짝 놀라자, 숙종은 “농(농담)이네. 지금 몇 년째인데 아직도 내 농도 못 알아 듣나?”라고 하는데, 사극이 아니라 개그 프로를 보는 듯 했습니다. 지금까지 정통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대사와 말투입니다.

궁궐 경내에 운석이 떨어진 것을 두고 신하들은 흉사의 징조라고 했지만, 숙종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내려가 운석을 손으로 만져보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숙종은 궁궐에 떨어진 운석으로 관자(망건에 달아 당줄을 궤는 작은 고리)를 만들어 신하들에게 주기도 했는데, 신하들은 관자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흉사의 징조인 운석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숙종은 나라를 생각하는 신하들의 충정을 높이 헤아린다며 흉물 조각을 나누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하들은 운석이 흉물이지만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숙종은 좀 경박해 보이지만 신하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혜안도 가졌습니다.


숙종이 해금을 켜던 동이를 찾으려 하는 것은 동이가 예뻐서가 아니라 장옥정을 위해서입니다. 숙종은 장옥정(장희빈)이 궁으로 다시 돌아오면 후궁의 첩지를 내릴 것인데, 이는 장옥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대해진 서인세력을 누르고 남인 세력에 힘을 보태 조정에 균형을 잡기 위한 것입니다. 장옥정은 남인과 서인 싸움에서 이리 저리 채이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임금은 이런 장옥정을 위로해주기 위해 맑고 청아한 해금 연주로 옥정을 위로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숙종은 여자(장옥정)를 개입시켜 남인과 서인간의 정치적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것인데, 이것이 동이와 숙종을 만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된 것입니다. 6회 예고편에서 동이와 숙종이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숙종이 해금 켜던 동이를 알아볼까요?

지금까지 정통 사극에서 보던 임금의 역할은 늘 반듯하고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등 정통 사극 대사 속에서 지진희의 말투를 비판하는 시청자들도 있지만 현대적 의미로 숙종을 재탄생 시키는 것으로 본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좀 가벼워 보이지만 하이파이브를 날려주며 궁녀들에게 후궁이 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주는 새로운 숙종의 모습은 신선 그 자체입니다. 늙고 꼬장꼬장한 신하들을 명석한 머리로 압도하는 절대적 카리스마도 있습니다. 지진희는 '동이'의 숙종역을 맡으면서 사극의 임금은 늘 무겁고 근엄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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