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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리뷰

추노, 천지호의 죽음이 너무 허망했던 이유

by 카푸리 201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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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추노> 18회는 천지호의 죽음편이었네요. 그런데 천지호의 죽음이 너무 허무했습니다. 가뜩이나 조연들의 줄초상을 치른 뒤라 또 천지호를 죽이면 어쩌나 했는데, 이렇게 빨리 죽일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포졸 화살 한 방에 그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있나요?  차라리 황철웅과 싸우다 장렬하게 죽었다면 아쉬움이라도 덜했을 겁니다. 물론 드라마는 제작진의 각본대로 전개되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의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맛깔스런 연기로 <추노> 인기에 큰 역할을 담당하던 성동일의 하차는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설마 천지호가 그렇게 쉽게 죽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설마가 천지호를 죽였네요. 이런 한 가닥 기대감을 제작진은 돌무덤으로 여지없이 싹뚝 잘라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대길이를 누가 구할까를 두고 네티즌 수사대가 예측을 많이 했었죠. 천지호, 업복이, 월악산 짝귀, 황철웅 등 나름대로 이유와 근거를 댔지만 대길이를 구한 것은 결국 청나라 장수 용골대의 부하 용이였네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의 예측과는 반대로 깜짝쇼를 벌이는데 성공해서 제작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 용이는 송태하를 구하고 포졸 화살을 맞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포졸 화살의 위력이 참 컸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포졸들 화살이 이리 저리 빗나갔는데, 18회는 왜 갑자기 포졸 화살의 그리도 정확한가요? 오합지졸이란 말과는 달리 한국 양궁의 저력을 다시 보여주려 했던 걸까요? 천지호는 형장에 매달려 있던 대길이를 구해 도망을 치다가 포졸이 쏜 화살을 등에 맞고 말았습니다.
대길이는 화살을 맞은 천지호를 부축해 산속으로 도망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업복이가 추적을 합니다. 업복이가 추적하는 이유는 대길이 때문에 다시 노비로 붙잡혀왔기 때문에 그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겠죠. 천지호는 안타깝게도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길이와 천지호는 추노꾼 시절 겉으로는 앙숙이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천지호 죽음을 앞두고 두 사람은 속마음을 드러내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잊지 말라’는 말은 천지호가 대길에게 가르쳐 준 말이었습니다. 오포교는 도망간 대길이를 잡으러 주막에 들이닥쳤으나 방화백이 오포교에게 몇 푼 뇌물을 주고 무마시켰습니다. 큰 주모, 작은 주모, 방화백 모두 대길이 편이었으니까요. 천지호 죽음을 두고 슬픈 와중에 방화백 모처럼 큰 건(?) 하나 했네요.

천지호는 피를 토하며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길이를 쫓는 것은 업복이 뿐이 아니네요. 관군도 도망간 대길이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천지호는 대길이를 안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옷 한 벌 해 입고 간다며 대길이를 꼭 안았습니다. 대길이는 천지호의 죽음을 온 몸으로 감싸 안으며 애써 눈물을 참았습니다. 천지호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유머가 넘쳤고, 의연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대길이에게 발가락을 좀 긁어달라고 했습니다. 발바닥 긁어달라는 것이 천지호의 유언이었습니다. 죽는 그 순간에 천지호는 시청자들에게 슬픈 웃음과 눈물을 던져주고 갔습니다. 천지호마저 포졸이 쏜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다 죽는 것을 보니 너무 허망했습니다. 그러나 대길이와 천지호의 마지막 이별 장면은 <추노> 베스트 명장면 오브 명장면이라 할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게 천지호는 죽었습니다.


천지호 죽음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대길이는 오열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천지호에게 끝까지 웃음을 보이며 떠나보낸 대길이는 그 냄새 난다는 천지호 발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바로 그 때 관군이 들이닥쳤지만 대길은 관군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안그래도 성난 대길에게 관군은 화풀이 대상이었을 뿐이었어요. 관군을 물리치고 나니 이번에는 업복이가 와서 총에 화약을 장전하네요. 천지호 앞에서 오열하는 대길에게 업복이가 총을 겨누었습니다. 이런 젠장... 이제 대길이도 죽는 걸까요? 물론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천지호가 죽는 것을 보니 ‘설마 대길이도...’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총을 겨누던 업복이는 천지호 발에 입김을 불어넣는 대길이를 보고 총을 거두었습니다. 대길이에 대한 앙심이 풀린 걸까요? 왜 총을 쏘지 않았던 걸까요? 업복이는 대길에게 총을 거두고 돌아와 초복이에게 ‘승냥이 우는 모습을 봤느냐?’며 대길을 짐승으로 생각했습니다. 짐승같은 추노꾼 대길이지만 짐승도 눈물을 흘릴 때는 죽이지 않는 법이라며 다음에 죽이겠다며 총을 쏘지 않은 것입니다.


대길이는 천지호가 입던 옷을 입고 그를 돌로 묻어주었습니다. 대길이는 죽은 천지호에게 다음 계획을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황철웅을 만져주고(손봐주고) 다시 돌아와 천지호를 햇빛 잘 드는 곳에 묻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대길이는 곧 바로 황철웅이 있는 한양으로 갔는데, 송태하도 한양으로 잠입해 들어왔습니다. 원손마마를 업고 도망치던 언년이는 관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대길이와 송태하는 다시 만나 승부도 나지 않을 싸움으로 드라마를 지루하게 만들었습니다. 결판도 나지 않을 대길과 태하의 대결 대신에 천지호가 황철웅과 싸우는 모습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어제 천지호는 ‘천사인볼트’라 불릴 정도로 그의 빠른 도망걸음이 화제였습니다. 그가 죽지 않은 것을 좋아했는데, 하룻만에 죽다니 허무하네요. 어차피 천지호가 죽을 운명이었다면 그 죽음을 더 멋지게 처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연들의 줄초상 때와는 달리 천지호는 주인공 대길이를 구하기 위해 형장까지 관군 옷을 해 입고 잠입해 대길에 대한 끈끈한 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죽은 것처럼 시청자를 속이던 최장군과 왕손이는 마술처럼 살려내면서 천지호는 화살 한방에 죽여 돌무덤으로 하차시켜 버리네요. 천지호 캐릭터는 주인공 이대길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어 ‘주연같은 조연’이란 말까지 들었습니다. 성동일의 미친 존재감 연기를 보지 못하고, 미쳐버린 듯한 웃음소리도 이제 못 듣게 됐네요. 천지호가 죽다보니 성동일의 명품 연기가 <추노> 인기의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야 나, 천지호', '나 천지호야~' 이 목소리가 앞으로 그립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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