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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김연아 우승이 우리 부부에게 남긴 것

by 카푸리 200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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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 아침겸 점심을 먹고 김연아의 피겨 세계선수권대회를 봤습니다.
아내는 피겨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즘 방송에서 하도 김연아, 김연아 하니 거실에 앉아 같이 방송을 보게되었습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큰 점수차로 1위를 차지해 프리에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김연아의 우승은 따논 당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그 어느때보다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김연아선수가 나와서 경기를 할 때는 그래도 좀 떨렸습니다. 그런데 역대 최고점인 207.71점을 받으면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경쟁자인 아사다 마오는 넘어지면서 4위로 쳐졌습니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훔치는 김연아의 모습에 아내도 찔끔 찔끔 눈물을 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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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제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한게 화근이었습니다.
"김연아어머니는 딸도 참 잘키웠네. 당신도 아이들 공부 하나는 똑소리 나게 잘하도록 신경 좀 써요" 이 말을 듣고 아내의 눈에 갑자기 광채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뭐라구욧! 내가 집에서 맨날 놀고 먹는줄 아나봐 참, 그럼 당신은 남들 다 대통령하고 대기업 사장할 때까지 뭐하고 지금까지 과장을 못 벗어나죠? 올해는 제발 승진 좀 해보세요"

이거 듣고 고니 남자의 자존심을 팍팍 건드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큰 소리를 냈습니다.
"아니, 누가 승진 하고 싶지 않아서 안하는 거야? 안 짤리고 계속 다니는 것만 해도 다행인줄 알아!"

"저도 김연아어머니처럼 아이들 키우고 싶지만 아이들이 말을 들어야죠. 말썽 피지 않고 학교 잘 다니는 것만 해도 아이들 잘 키우는 거에요. 그렇게 하기도 요즘 얼마나 힘들다고요."

생각보다 아내와의 감정 싸움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실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면서 화가 덜 풀렸는지 그릇 닦는 소리가 평소보다 컸습니다. 저에 대한 분풀이를 설겆이 하면서 그릇으로 다 푸는 듯 했습니다. 다행히 그릇은 깨지지 않은 듯 합니다.

저는 어제 김연아가 우승하는 장면을 보면서 지난해 베이징대회때 관중석에서 모습을 보인 김연아선수의 어머니 박미희씨가 생각났습니다. 오늘의 김연아 뒤에는 항상 박미희씨가 있었습니다. 박미희씨는 척박한 우리 나라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딸을 통해 다시 쓰게한 연출자, 매니저, 숨은 공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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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를 우연히 아이스링크에 데리고 가서 스케이트를 처음 신겼는데, 유달리 남다른 재능과 호기심을 보이던 딸을 보고 엄마는 '이거다!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통 운동을 시켜도 돈이 되는 운동을 시키는게 부모들의 생각인데, 10년전 우리 나라 피겨스케이팅은 그야말로 황무지였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딸이 피겨에 재능도 있거니와 관심을 보여 딸의 의지대로 피겨스케이팅을 할 수 있도록 그때부터 열성적인 후원자가 되어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전용 피겨링크장 하나 없는 척박한 한국 피겨스케이팅계에서 김연아가 살아 남기란 정말 힘든 고행길과 같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러 저리 실내 링크를 떠돌며 딸과 함께 훈련을 하며 엄마 박미희씨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리고 지금과 같이 딸이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설 것이란 생각이 들었을까요?

김연아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까지 빙판장에 어머니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정말  김연아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했습니다. 박민희씨는 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딸의 재능을 믿고 끝까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꿋꿋하게 뒷바라지 하였고, 김연아는 어머니의 헌신을 잊지 않고 열심히 운동에 전념하여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만일 박미희여사가 강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세계적인 김연아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 아내가 박미희여사를 따라가기엔 무리인가 봅니다.

어제 우승한 김연아선수 뒤에서 고생한 박미희여사에게도 무한한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부부싸움은 했어도 오늘 아침 생각해보니 김연아선수의 우승은 그래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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