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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현대판 고려장에 아내 눈물 흘리다.

by 카푸리 2009.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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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TV를 보는데, 한겨울 추위보다 매서운 경제 한파로 길거리나 요양원으로 내몰리는 노인 실태가 방송되었습니다. 이른바 벼랑끝의 노인들이며,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아들에 의해 모텔방에 버려진채 영양실조에 걸린 어느 할머니 모습을 보다가 아내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내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모텔방에 버려진 할머니가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아내의 어머니, 그러니까 장모님은 요양원에 계십니다.

처가쪽은 4남 2녀, 아내는 2녀중 둘째입니다. 밑으로는 처남이 4명이 있고 모두 결혼했습니다. 장모님은 아내가 고등학교 2년때 장인이 돌아가신후 처형(당시 20살) 5살, 7살, 11살, 13살 처남들을 힘들게 키우셨습니다. 장모님은 아무리 힘들어도 장인어른이 남겨놓고 간 재산(선산과 논, 전답)을 단 한평도 팔지 않고 처남들을 잘 키워 모두 장가 보내고 출가시켰습니다. 지금 장모님은 연세가 64살입니다. 아들과 딸을 다 출가시키고 난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장모님은 2년전부터 치매가 왔습니다.

장모님이 치매기가 오자, 처남들은 장모님이 정신을 놓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재산 분배였습니다. 아들 4명이 선산 5천여평, 논 4,800평, 전답 1,500평(충남 당진 소재)에 대한 분배를 했습니다. 물론 이 재산 분배에 처형과 아내는 일원 한푼 받지 않고, 재산 포기 각서에 흔쾌히 동의도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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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 5월, 장모님 생신을 맞아 큰 처남집에 갔는데, 깜짝 놀랄 말을 들었습니다. 처남들이 장모님을 시골 요양원에 모시겠다는 것입니다. 큰 처남댁도 치매기가 있는 시어머니 모시기 힘들고, 그렇다고 처남들이 돌아가며 모시기도 그렇고 해서 요양원에 모시고, 처남 4명이 비용은 공동 부담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처남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나무랐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장모님은 요양원에 계십니다. 한달에 85만원의 비용이 들며, 사립 요양원이기 때문에 시설 또한 부족함은 없지만 아무리 좋은 호텔에서 지낸다 해도 가족의 체취와 정을 느끼지 못하는 요양원은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습니다. 장모님이 요양원(군산 소재)으로 떠난후 아내는 한달에 한번씩 요양원을 찾아가 장모님을 뵙습니다. 장모님을 뵙고 올때마다 아내는 늘 우울했고, 눈물을 많이 흘린 듯 눈이 퉁퉁 부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집 형편도 장모님을 모실 형편이 안돼 불효를 저지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사위도 자식이기에 장모님 모시지도 못하면서 처남들 탓할 입장은 안됩니다.

지난 구정 다음날 큰 처남집을 가니 장모님이 요양원에서 잠시 설날을 쉬기 위해 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세배를 했는데, 갑자기 아내가 장모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설날 다음날이라 정초부터 웬 눈물이냐며 아내의 눈물을 제지했지만, 그럴수록 아내는 더 설움이 복받치는 듯 했습니다. 장모님 또한 아내가 우는 것을 보고 정신이 잠시 돌아오셨는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순간 처남들과 조카들 모두 숙연해졌고, 그 누구도 어떤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처남들이 장모님을 모시지 않는것에 대해 사위로서 따끔한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은 저와 아내 또한 똑같은 자식으로서 모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날을 쉬시고 장모님은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설날에 장모님 보고 눈물을 쏟아 부은 눈이 이제 다 가라 앉았는데, 오늘 거리로 내몰리는 노인들 방송을 보고 아내가 또 눈물을 흘립니다. 아마도 지금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장성한 자식이 여섯이나 되도 누구 하나 늙은 장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형편 때문이라고만 말하기 부끄럽습니다. 초가 삼간에 보리밥을 먹어도 오손도손 시어머니 모시고 살던 옛날 어릴 때가 생각납니다. 가난하고 못 먹고 못살던 시대였지만, 가족간의 정과 사랑은 많았습니다. 그런 정과 사랑이 요즘은 다 메마른 것 같습니다.

어제 방송에서 나온 현대판 고려장 얘기로 아내는 오늘 하루 종일 또 우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내의 우울함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저 또한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니 부끄럽습니다. 저 또한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지만 장모님의 모습이 어쩌면 미래의 제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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