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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5형제중(남자 3, 여자2) 제가 둘째입니다. 평생을 오형제 키우느라 힘들게 살아오신 부모님중 아버님은 재작년에 돌아가셨고, 83세가 되시는 어머님은 저희집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자 동생 2명은 출가외인이라고 명절때 잘 오지 못합니다. 아마도 마음은 오고 싶은데 시댁식구 눈치 보나 봅니다.
아내는 둘째 며느리라 어제부터 어머님이 계시는 평촌으로 가서 하루 종일 음식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3월 어머님 생신때는 큰집과 막내 동생 모두 바쁘다고 못왔지만, 설날 때나 오려나 하고 형제들이 모여 먹을만큼 충분하게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는 큰 형님댁에 눈길에 위험하니 힘들면 오지 말라고 전화를 했는데, 이런 어머님의 전화는 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큰 형수님은 정말 오지 말라는 얘기로 알아 들었습니다. 큰 형수는 해가 갈 수록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봅니다.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눈이 너무 와서 고민했는데, 다음에 시간 있으면 꼭 찾아뵐께요."
대전에서 큰 형님을 낳고 무작정 안양으로 올라오신 부모님은 평생 자식 키우느라 고생께나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공부는 시켜야 한다며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공부시킨 부모님의 억척스러움 덕분에 큰형님은 대학까지 졸업하고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지금은 대전에서 근무합니다. 큰 형수님도 공무원입니다. 한마디로 큰 형님네는 불경기 여파를 받지 않고 삽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과일을 팔며 시장에서 인생을 다 보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것이 바로 안양 외곽에 남긴 땅 1,500평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어머님은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형제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기로 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저희집이 어머니 몫으로 더 받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어머님 생신때 이렇게 재산 분할을 하기로 했는데, 그런 결정이 있고 난 이후부터 큰 형님네는 명절때가 돼도 기분이 나쁜지 잘 오지 않습니다. 작년 추석때도 비상 대기 근무라고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머님의 재산 분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장남으로서 당연히 재산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큰형님 생각입니다.
어제 저녁 설날 음식을 만든후 아내는 저녁 늦게 동서와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서 술이 조금 취하니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시어머니 모시는 것은 편한줄 알아? 끼니때마다 와서 밥차려 드려야 하고... 요즘엔 치매기도 있으셔, 나도 이젠 힘들어." 큰형님댁이 맞벌이 공무원으로 일하느라, 20년을 넘게 제 아내가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명절때마다 혼자서 음식 다 만들고 해도 한번도 힘든 내색 안하더니 이번 설날에는 동서와 술 한잔을 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눈물까지 보이는 것을 보니 아내에게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내도 이젠 나이가 들어 힘이 드는가 봅니다.
그런데 막내동생도 요즘 사는게 힘들어 빨리 땅(1,500평)을 팔아 나누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땅은 어머님이 갖고 계신 유일한 힘입니다. 그 땅을 팔고 나면 어머님이 아마도 갑자기 힘이 없어질 듯 합니다. 아마도 땅을 팔아 형제들까지 재산을 다 분할하면 큰 형님은 더 명절날 뜸하게 올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 차례를 지낸후 떡국을 먹으며 어머님은 큰 형님댁이 오지 못해서 그런지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해보였습니다. 평생을 자식 키우며 살았지만, 아직도 자식 걱정에 밤잠 편히 못 주무십니다. 이런 어머님의 마음 100분의 1이라도 알아준다면 아무리 바쁘고, 폭설이 왔어도 입석 기차를 타더라도 2시간 30분이면 오는 거리를 오지 못하는 큰 형님이 너무 야속해 보였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가 어머니 모신다고 재산 더 갖지 말고 5남매가 똑같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20년 동안 시부모를 모신 둘째(제 아내) 며느리에 대해 많은 고마움을 갖고 계시고, 또 돌아가신 아버님 또한 이런 뜻을 어머님께 전하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남이 많이 받기는 커녕 오히려 둘째가 재산을 더 많이 받는 것에 대해 큰형수님이 무척 섭섭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큰 형님네는 부부가 공무원이라 이담에 연금도 받으시고 살만하신데, 왜 그렇게 섭섭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큰 형님네가 재산 때문에 기분이 나빠 안 온것이 아니라 정말로 눈이 많이 와서 혹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며 오지 말라는 어머님의 깊은 뜻 때문에 오지 않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과 큰형수님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큰 형님의 마음 또한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어머님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재산보다 당신이 살아계신 것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당신이 하늘이고 땅이십니다. 오래 오래 사세요!
아내는 둘째 며느리라 어제부터 어머님이 계시는 평촌으로 가서 하루 종일 음식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3월 어머님 생신때는 큰집과 막내 동생 모두 바쁘다고 못왔지만, 설날 때나 오려나 하고 형제들이 모여 먹을만큼 충분하게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는 큰 형님댁에 눈길에 위험하니 힘들면 오지 말라고 전화를 했는데, 이런 어머님의 전화는 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큰 형수님은 정말 오지 말라는 얘기로 알아 들었습니다. 큰 형수는 해가 갈 수록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봅니다.
"어머니! 그렇지 않아도 눈이 너무 와서 고민했는데, 다음에 시간 있으면 꼭 찾아뵐께요."
(명절때만 되면 부모님들은 자식 기다리는 낙으로 사는데,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서운하실까? 한국일보 사진)
대전에서 큰 형님을 낳고 무작정 안양으로 올라오신 부모님은 평생 자식 키우느라 고생께나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공부는 시켜야 한다며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공부시킨 부모님의 억척스러움 덕분에 큰형님은 대학까지 졸업하고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지금은 대전에서 근무합니다. 큰 형수님도 공무원입니다. 한마디로 큰 형님네는 불경기 여파를 받지 않고 삽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과일을 팔며 시장에서 인생을 다 보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남긴 것이 바로 안양 외곽에 남긴 땅 1,500평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어머님은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형제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기로 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저희집이 어머니 몫으로 더 받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어머님 생신때 이렇게 재산 분할을 하기로 했는데, 그런 결정이 있고 난 이후부터 큰 형님네는 명절때가 돼도 기분이 나쁜지 잘 오지 않습니다. 작년 추석때도 비상 대기 근무라고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머님의 재산 분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장남으로서 당연히 재산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큰형님 생각입니다.
어제 저녁 설날 음식을 만든후 아내는 저녁 늦게 동서와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서 술이 조금 취하니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시어머니 모시는 것은 편한줄 알아? 끼니때마다 와서 밥차려 드려야 하고... 요즘엔 치매기도 있으셔, 나도 이젠 힘들어." 큰형님댁이 맞벌이 공무원으로 일하느라, 20년을 넘게 제 아내가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명절때마다 혼자서 음식 다 만들고 해도 한번도 힘든 내색 안하더니 이번 설날에는 동서와 술 한잔을 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눈물까지 보이는 것을 보니 아내에게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내도 이젠 나이가 들어 힘이 드는가 봅니다.
그런데 막내동생도 요즘 사는게 힘들어 빨리 땅(1,500평)을 팔아 나누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땅은 어머님이 갖고 계신 유일한 힘입니다. 그 땅을 팔고 나면 어머님이 아마도 갑자기 힘이 없어질 듯 합니다. 아마도 땅을 팔아 형제들까지 재산을 다 분할하면 큰 형님은 더 명절날 뜸하게 올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 차례를 지낸후 떡국을 먹으며 어머님은 큰 형님댁이 오지 못해서 그런지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해보였습니다. 평생을 자식 키우며 살았지만, 아직도 자식 걱정에 밤잠 편히 못 주무십니다. 이런 어머님의 마음 100분의 1이라도 알아준다면 아무리 바쁘고, 폭설이 왔어도 입석 기차를 타더라도 2시간 30분이면 오는 거리를 오지 못하는 큰 형님이 너무 야속해 보였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제가 어머니 모신다고 재산 더 갖지 말고 5남매가 똑같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20년 동안 시부모를 모신 둘째(제 아내) 며느리에 대해 많은 고마움을 갖고 계시고, 또 돌아가신 아버님 또한 이런 뜻을 어머님께 전하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남이 많이 받기는 커녕 오히려 둘째가 재산을 더 많이 받는 것에 대해 큰형수님이 무척 섭섭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큰 형님네는 부부가 공무원이라 이담에 연금도 받으시고 살만하신데, 왜 그렇게 섭섭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큰 형님네가 재산 때문에 기분이 나빠 안 온것이 아니라 정말로 눈이 많이 와서 혹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며 오지 말라는 어머님의 깊은 뜻 때문에 오지 않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과 큰형수님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큰 형님의 마음 또한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어머님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재산보다 당신이 살아계신 것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아버님이 돌아가신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당신이 하늘이고 땅이십니다. 오래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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