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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리뷰

‘지붕킥’, 빵꾸똥꾸는 왕따 해리의 울음

by 카푸리 200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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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해리의 ‘빵꾸똥꾸’가 화제입니다. 뉴스 진행을 하는 앵커가 ‘빵꾸똥꾸’ 뉴스를 전하다 방송 사고에 버금가는 해프닝이 발생하는가 하면, 모 국회의원은 해리를 정신분열증으로까지 몰아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해리가 ‘지붕킥’에서 왜 ‘빵꾸똥꾸’란 말을 남발하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해리는 이순재집에서 가장 따돌림 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해리가 버릇 없고 자기만 아는 아주 이기적인 아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해리만의 아픔도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리는 혼자였습니다. 이순재집 사람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러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순재는 김자옥과 근사한 저녁식사 약속 때문에 나갔고, 이현경은 정보석과 함께 오랜만에 기분을 내기위해 나갔습니다. 지훈이는 정음이와 산타와 루돌프가 되어 함께 지내고, 집에 남겨진 사람은 준혁, 세경, 신애, 해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남은 해리의 오빠 준혁이는 세경과 신애가 만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쳐준다며 신경써주고, 해리 혼자 왕따 당한 느낌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리가 트리를 만들고 있는 세경자매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리 없습니다. 그래서  재활용품을 가지고 구질 구질하게 X-마스 트리를 만든다며 ‘구지리마스’라고 놀려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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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질구질한 트리라고 놀렸지만 불 켜진 트리를 보고 좋아하던 해리를 보니 외로워보였습니다. 오죽하면 해리가 평소 그렇게도 싫어하는 신애와 함께 인형을 가지고 놀았을까요? 해리는 신애가 ‘왠일인가?’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자,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바보야’라며 둘러댔지만 사실은 혼자라 너무 외로워 신애와 놀자고 한 것입니다. 해리의 나이때 혼자 있는 것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해리는 세경과 신애를 통해 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지붕킥’이 처음 방송될 때부터 해리는 혼자 인형놀이를 하는 등 어른들과는 달리 혼자놀기의 달인처럼 보였습니다. 오빠 준혁이 역시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해리와 잘 놀아주지 않습니다. 해리가 준혁이에게 같이 불럭쌓기 하며 놀자고 해도 바쁘다며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정음은 준혁이에게 ‘왜 해리와 같이 놀아주지 않느냐며, 가족들이 정이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음이가 정확히 본 것입니다. 과외를 와서 볼 때마다 혼자 있는 해리가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럼 왜 해리는 ‘빵꾸똥꾸’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걸까요? 이 말을 쓸 때면 모든 집안 식구들이 해리를 쳐다봅니다. 해리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빵꾸똥꾸란 말을 자기 존재를 알리는 언어로 사용하는 거 같습니다. 해리에겐 ‘빵꾸똥꾸’가 욕이 아닙니다. 그리고 욕인 줄도 모릅니다. 갓난 아이가 배가 고프거나 엄마의 따뜻한 가슴이 그리울 때 유일하게 전달하는 수단이 울음입니다. ‘응애~’하고 울 때는 젖을 주거나 달래주기 때문인데, 갓난 아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할 때 전달하는 말도 역시 울음입니다. 해리에게 ‘빵꾸똥꾸’란 말은 갓난 아이의 울음과 같습니다.

‘지붕킥’을 보면 <거침없이 하이킥>에 비해 가족애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모두 다 따로 따로 분위기입니다. 같이 산다고 가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해리에게 가족들은 따뜻하게 대해주기 보다 통제하고, 금지시키는 일이 더 많습니다. 엄마 이현경은 늘 해리를 꾸짖고 다그치기만 합니다. 혼내고 나서도 달래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리는 늘 반항적입니다. 해리가 이기적이고 버릇없게 자라는 것은 가족들 책임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들이 해리에게 무관심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하는 해리의 악행(?)과 빵꾸똥꾸는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현경이 교사로 일을 하기 때문에 해리는 낮에는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빠 준혁이가 학교갔다가 일찍 와도 해리에겐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요즘은 준혁이가 세경이와 핑크빛 러브라인을 만들다보니 준혁이는 해리보다 오히려 신애에게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준혁이가 신애에게 먹을 것을 주면 어느새 해리가 달려와 ‘내꺼야’ 하면서 뺏는 것입니다. 정말 배가 고파서 뺏는 것이 아니라 해리는 신애에게 가는 사랑과 관심을 뺏고 싶은 겁니다. 해리가 신애한테 못되게 구는 것은 질투심 때문인지 모릅니다. 자기는 집에서 늘 혼자 지내는데, 신애는 언니 세경이가 늘 옆에 있어주고 세경이가 가정부로 일하는 와중에도 놀아주기 때문에 신애가 부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애는 세경이 외에도 줄리엔이라는 튼튼한 키다리 아저씨가 있는데 해리는 그런 사람도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자랄 것 같은 해리지만 자세히 보면 ‘지붕킥’에서 가장 소외된 캐릭터입니다. 불쌍하게 들어와 사는 신애를 잘 대해줘야 하는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신애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것 같습니다.

해리네 가족들은 가족애가 없지만 신애가족들은 가난하지만 가족애만큼은 깊습니다. 첩첩산중에서 도망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세경자매가 남산에서 아빠를 만나고 헤어질 때 아빠는 세경에게, 세경은 아빠에게 힘들게 번 돈을 쥐어주었습니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신애가족처럼 해리네 가족도 개인주의로 흐르지 말고 가족간의 훈훈한 정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요즘은 작가들이 너무 러브라인에만 치중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해리의 악행과 ‘빵꾸똥꾸’란 말은 가족들의 무관심에서 온 것이고, 그 결과 해리는 ‘지붕킥’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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