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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좋아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성지와 한옥성당

by 카푸리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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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조선 시대 한양을 지키던 군사적 요새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겁니다. 천주교 최초 박해인 신유박해(1791)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최초의 순교자(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했습니다. 그 후 병인박해 때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성지는 1999년 지정됐습니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와 무명 순교자 등 300여 명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순교성지 입구에 순교자현양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높이가 4m, 무게만 해도 100t이 넘는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이 옥에 갇혀 목에 썼던 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양비 앞에 서니 순교자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탄압을 받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종교탄압이 너무 심했습니다.

순교자현양비 앞에는 남한산성 피에타 동상이 있습니다. 피에타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1499년에 만든 세기의 걸작품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시신을 성모마리아가 무릎에 안고 있는 모습을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죠. 남한산성 피에타는 신유박해 순교자 한덕윤(토마스)가 교우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픔에 잠겨 넋을 잃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동상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현양비에서 나오면 벽 쪽에 특이한 동상이 있습니다. 제목을 보니 '말씀의 어머니'입니다. 아이를 업고도 성경을 손에 들고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입니다. 뭔가 뭉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동상을 보니 종교의 힘은 참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순교자현양비를 본 후 남한산성 순교성지로 들어가 봅니다. 성당 대문에는 '영혼의 안식처 남한산성순교성지'라고 쓴 간판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고풍스러운 한옥 느낌이 나는 성당이 있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양반 가옥을 보는 듯합니다. 한옥성당 정면에 한문으로 '聖堂(성당)'이라고 크게 쓰여 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밖을 먼저 둘러보았습니다. 성당 앞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있습니다. 성모마리아상은 어느 성당에나 다 있죠. 이곳에서 신자들이 기도하고 성당에 들어갑니다. 저도 천주교 신자라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모마리아상 뒤로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슬픔의 길' 혹은 '고난의 길'로 불리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합니다. 이 길에는 각 각의 의미를 지닌 14개의 지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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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조금 춥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고즈넉하고 한적한 길을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산책로로도 좋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쭉 걸어오면 야외 미사 터가 있습니다. 큰 제대가 있고 그 맞은편에 예수의 십자가상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 오면 종교가 없더라도 괜히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가 갔을 때 천주교 신자들이 대형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앞으로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야외 미사 터에서 조금 내려오면 특이한 동상이 있습니다. 혹시 백지사(白紙死)라고 들어보셨나요? 병인박해 때 '백지사'라는 특이한 형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백지사는 순교자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 한지를 덮은 일을 거듭해 숨이 막혀 죽게 하는 형벌인데요, 죽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이 동상 앞에만 서도 오싹한 기분이 듭니다.

남한산성순교성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이제 한옥성당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문이 닫혀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열려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도를 하는 분이 있습니다.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희미하게 내부를 비추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분이 나간 후 내부를 둘러봤습니다. 내부 구조는 원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치 한옥처럼 말이죠.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대 뒤 벽면에 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상을 보니 뭔가 가슴이 찡했습니다. 다른 성당 예수님과 달리 순교자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 쓰고 있던 칼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당 좌우 벽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유리가 있어서 그 유리를 타고 들어오는 햇빛이 오묘하게 보였습니다. 아내와 성당 안에서 한참을 묵상했습니다. 일상에 찌든 영혼 샤워한 기분입니다.

남한산성 한옥성당에서 2022년 한해를 무탈하게 보내준 것에 감사하고 2023년 계묘년의 소확행을 빌었습니다. 겨울 강추위지만 고즈넉한 풍경이 아름다운 남한산성 순교자 성지와 한옥성당에서 한해 동안의 지친 마음을 정리하고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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