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여러분, 이 시조 구절 기억나시나요? 학창 시절에 배운 약천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선생의 시조입니다. 저는 그냥 단순한 시조인 줄 알았는데요, 이 시조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남구만 선생이 시인이 아니라 조선 중기 영의정까지 지낸 문신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분의 묘소가 경기도 용인시에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지난 2018년에 충남 홍성을 여행했었습니다. 홍성에 거북이마을이 있는데요, 이곳에 약천초당이 있습니다. 당시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클라우드에서 꺼내 보니 기억이 생생합니다. 약천초당은 남구만 선생의 생가터에 지은 초가입니다.
남구만 선생의 대표적인 시가 새겨진 시비도 있습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여행했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이 시인이 아니라 영의정(지금의 국무총리)까지 지낸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영의정을 지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초가집은 소박합니다. 이곳에서 말년을 보낸 남구만 선생은 유명한 시를 지었는데요, 남구만의 시 중에서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의 재(領)는 거북이마을에 있는 북방서낭당의 고개이고, 사래 긴 밭은 거북이마을 냉천 옆 긴 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홍성에서 태어나 관직에서 물러난 후 낙향했는데요, 고향에서 83세에 죽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장수하신 거죠. 그런데 무덤은 홍성이 아니라 경기도 용인에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남구만 선생 묘로 가는 길에는 시가비(時歌碑)가 있는데요, 남구만 선생이 직접 쓴 시가 적혀 있는 비석입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면 놓칠 수 있는데요, 마을 입구에 유심히 보면 있습니다. 시가비 정면에는 현대어로 바꾼 시가 적혀 있고요, 옆에는 고어(古語)로 되어 있습니다.
남구만 선생의 시조는 봄날 농촌의 일상에서 근면한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표현된 권농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이면에는 난세에 복지부동하고 있는 관료들의 자세와 경세 치국에 대한 염려와 경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시가비 옆에는 신도비가 있습니다. 신도비 뒤에 있는 묘를 남구만 선생의 무덤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후손의 묘라고 합니다. 여기서 샛길을 따라 큰 묘가 나타날 때까지 쭉 들어가다 보면 비로소 남구만 선생 묘를 만나게 됩니다.
잠시 걸으니 저 앞에 남구만 선생 묘소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아주 넓은 곳에 묘가 있습니다. 묘소가 넓고 마치 왕릉처럼 높은 곳에 있어서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남구만 선생 뵙기가 쉽지 않네요.
묘소 입구에 남구만 선생 묘역 안내도와 생애가 기록된 관광 안내판이 있습니다. 관광 안내판이 많이 훼손됐는데요, 용인시에서 정비했으면 좋겠네요. 이 안내판 내용이 제가 위에서 소개해 드린 내용입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남구만 선생 묘소에 올라왔습니다. 묘는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남구만 선생 묘소는 1990년 11월 22일에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묘소 옆에 남구만 선생에 대해 설명해주는 관광안내판이 또 있습니다.
남구만 선생의 묘소는 본래 양주시 불암산 근처에 묻혔다가 뒤에 1721년 3월 21일 앞서 별세한 부인 묘소가 있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 하부곡 마을에 이장한 것이라 합니다. 살아서 잠시 떨어져 있다 죽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남구만 선생의 고향이 홍성인데, 왜 용인에 묻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묘소에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시를 읊어봅니다. 동창이 밝을 때까지 잠을 자지 말고 일찍 일어나 밭을 갈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거죠. 묘소 잔디밭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원한 풍광이 펼쳐집니다. 풍수지리는 잘 몰라도 명당자리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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