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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좋아

조선왕릉 숲길 개방, 남양주시 사릉을 걷다

by 카푸리 202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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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개국한 조선 왕조는 1910년까지 519년 동안 27대에 걸쳐 왕과 왕비를 배출하였습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왕릉은 남북한에 총 42기가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제릉(태조의 왕비 신의왕후의 묘)과 후릉(정종의 묘) 2기를 제외하고 모두 유네스코에 등재됐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사릉 앞에도 유네스코 등재 기념물이 있습니다.

사릉에 들어서면 이렇게 초록이 우거진 숲길이 먼저 나타납니다. 오전 9시에 문을 열자마자 들어갔는데요, 제가 첫 손님입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숲속 내음이 아주 상큼했습니다. 이런 길을 혼자 걷노라니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 느낌입니다.

사릉은 조선 제6대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의 능입니다. 정순왕후는 15세에 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단종과 이별하고, 부인으로 강등되어 평생을 혼자 살아가야 했던 불운한 왕비입니다. 단종은 1457(세조 3)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단종 복위사건으로 인해 영월로 유배되어 17세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단종이 세상을 떠나자 정순왕후는 정업원(왕실 여인들이 출가해 수도하던 절)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을 향해 통곡했다고 합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임금이든 아니든 사랑하는 남편을 멀리 귀양보냈으니까요. 1521(중종 16)82세로 세상을 떠났고, 1698(숙종 24)에 정순왕후로 복위되었습니다.

사릉은 몇 번 왔던 곳인데요, 이번에는 사릉을 보러 온게 아니고 소나무 숲길을 걸으려고 왔습니다. 입구에 소나무 숲길 가는 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바람도 솔솔 불고 여름 냄새도 느껴집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숲길을 전세 낸 기분입니다.

사릉 숲길은 약 550m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왕복해도 1.1km입니다. 소요 시간은 왕복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더 걷고 싶다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 되죠. 황톳길이라 걷는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크게 호흡해보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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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는데 붓꽃(blood iris)이 반겨주네요. 꽃봉오리가 먹을 묻힌 붓 모양이어서 붓꽃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붓꽃은 5~6월에 피는데요, 주로 자주색입니다. 그런데 하얀 붓꽃 두 송이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금붓꽃이라 해서 노란 붓꽃은 봤는데 흰 붓꽃은 자주 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더 반가웠습니다.

저는 오전에 아내와 숲길을 걸었습니다. 오전에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릉의 소나무 숲은 역사가 깊고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습니다. 소나무 숲길을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가면서 아내와 정순왕후에 대해 서로 얘기도 합니다. 임금이든 아니든 남편 없이 살아야 했던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봅니다.

길이 너무 좋아서 한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사실 도심에 살면서 이런 길 걷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런 숲속에 들어가면 상쾌한 냄새가 숲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피톤치드 때문입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 등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천연 항균 물질입니다. 특히 소나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요, 시기적으로 나무가 잘 자라는 초여름과 늦가을이 적기라고 합니다.

걷다가 나무 데크에서 숲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쉬었습니다. 이런 숲길 2km를 걷는 것만으로도 우울, 피로 등의 부정적 감정을 70% 이상 감소시키며 면역력 증진에도 효과가 있다는 조사 결과(국립산림과학원)도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블루 등 우울감을 느끼신다면, 가까운 조선왕릉 숲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조선 왕릉 숲길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이번에 개방된 조선왕릉은 방문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월요일은 휴관이기 때문에 숲길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630일까지 개방 후 다시 문을 닫았다가 가을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합니다.

소나무 숲길 끝에 재실(齎室)이 있습니다. 재실은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평상시에 능참봉(9)이 근무하며 능역을 관리하며 지키는 장소입니다. 재실은 제사를 지내는 엄숙한 곳이라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실 주변에는 목단꽃이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숲길이 너무 짧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갑니다. 초록초록한 숲을 보니 눈도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의 왕릉 숲길 데이트였습니다. 여러분도 가까운 곳에 있는 왕릉 숲길을 걸으며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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