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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좋아

독립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 서울 남산공원 백범광장

by 카푸리 202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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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원래 4월 13일로 기념해오다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 1919년 4월 11일이기 때문에 바꾼 겁니다.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앞두고 서울 남산의 백범광장을 다녀왔습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하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아무래도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아닐까요?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의 주석(지금의 국무총리)이었죠. 김구 선생은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지휘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의 완전 자주독립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안타깝게 암살당했습니다.

서울 남산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는 곳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다소 한적한 모습입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등 개인 방역수칙을 지키며 남산 백범광장을 돌아봤습니다.

일제 강점기 남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일제는 남산공원에 '조선신사'를 세웠습니다. 이후 1925년 조선신사는 '조선신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조선인이 강제로 신사참배를 했던 곳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조선신궁은 다음날 해체작업에 들어가 10월 철수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민들이 이제 막 봄꽃이 피기 시작한 남산을 산책하거나 쉬고 있습니다.

서울 남산에는 백범광장이 있습니다. 백범광장은 서울 한양도성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남산공원까지 이어지는 남산 구간에 있습니다. 도보로 간다면 힐튼호텔 앞 남산공원에서 올라가는 산책로 중간에 있어 잠시 산책하기 좋습니다. 4.19 혁명 이후 백범광장을 조성하며 김구 선생의 서거 20주기를 맞아 동상을 세웠는데요. 백범 김구 선생의 호를 따 백범광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넓은 잔디밭과 함께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의 기마상,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부통령인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함께 있습니다.

백범광장에서 안중근 기념관 아래 백범 김구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동상은 김구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9년 8월 남산공원 백범광장 안에 설립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이 오른손을 들어 '어서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듯한 모습입니다.

동상 안내문이 있어 김구 선생의 삶도 알 수 있습니다. 신민회 가입부터 한인애국단 조직,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까지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과정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인 '백범일지'를 썼죠.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에 나온 구절입니다. 얼마나 독립을 원했으면 소원이 독립일까요?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유와 평화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김구 선생은 서울 효창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매년 임시정부 수립기념일 전후해서 많은 사람이 찾죠.

김구 선생 동상 옆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입니다. 이시영 선생은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만큼 한평생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만주 삼원보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힘썼지요.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도 참여했는데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재무총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 후반에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기꺼이 재무총장을 맡을 정도로 독립운동의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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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61주년을 기념하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건립됐습니다. 기념관 앞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1970년 10월 최초 건립된 이후 2010년 신관 개장에 맞춰 새로 조성한 동상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태극기를 흔들던 모습입니다. 동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왼손에 그 유명한 단지까지 볼 수 있습니다.

동상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의 하나인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가 쓰인 비석이 있습니다. 이 뜻은 '국가의 안위를 애쓰고 걱정한다'라는 뜻으로,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보여주는 유묵입니다. 저도 안중근 하면 이 유묵이 생각납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어록, 휘호 등이 새겨진 비석이 많습니다. 그중 안중근 의사의 장부가도 있습니다. 장부가 내용 한 번 볼까요?

“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꼬.

동풍이 점점 차가우니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안중근의 장부가)

이 외에도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의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 등의 비석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묵 옆에 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 앞에 '한얼'이라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안중근 의사의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 애국심을 숭모하는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들어가는데 벽에 안 의사의 유묵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관은 무료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 후 입장합니다. 그리고 열화상 카메라로 온도를 체크한 뒤 입장합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백범광장은 물론 안중근기념관까지 관람했습니다.

2010년 새로 건립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의사의 단지동맹을 상징하는 12기둥 형태의 건물로 구성됐습니다. 전시실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3개층입니다. 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의 출생부터 순국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가 전시돼 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평화사상을 널리 선양하여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하는데 기여하는 전시관입니다.

여기서 전시관을 다 소개하진 못하지만요, 제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안 의사의 단지와 재판 장면입니다. 안 의사는 자신의 힘으로 기필코 조국의 독립을 맹세하며 왼손 약지를 끊었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안 의사하면 그래서 단지가 가장 먼저 생각나잖아요. 안 의사는 단지 후 그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네 글자를 썼습니다. 독립에 대한 안 의사의 의지를 보여준 증표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가 한국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행한 것이므로 만국공법에 의해 처리해 줄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법정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안 의사는 처형 전에 마지막 유언을 했습니다. 그 유언이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유묵으로 있습니다. 그 유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내가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으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 의사 유언)

김구 동상 앞으로는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봄날을 즐깁니다. 넓은 공원뿐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아 탁 트인 느낌을 얻을 수 있어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봄날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을 듯합니다. 지금 막 봄꽃이 피고 있습니다.

남산 백범광장에서 김구 선생의 나라사랑, 안중근 의사의 절개와 성재 이시영 선생의 충절을 느꼈습니다. 한평생 독립운동의 삶을 걸었던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와 이시영 선생을 보며 독립정신의 참된 뜻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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