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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8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 행궁 이야기 남한산성은 경기도립공원입니다. 국가 지정 사적 제57호인 남한산성은 문화재가 아주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호)입니다. 행궁(行宮)은 임금이 서울(한양)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남한산성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싸웠습니다. 이런 과정은 동명 소설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이후에도 숙종·영조·정조·철종·고종이 여주나 이천 능행 길에 머물러 이용하였습니다. 남한산성 행궁으로 가는 길목 종각에 천흥사 동종이 있습니다. 종각 좌측에 안내판을 보니 .. 2023. 11. 22.
남한산성 한옥성당과 순교성지 남한산성은 한양을 지키던 군사적 요새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겁니다. 천주교 최초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최초의 순교자(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했습니다. 그 후 병인박해 때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했지만 지금까지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순교자는 36명뿐이라고 합니다. 남한산성순교성지는 1999년 지정됐습니다. 천주교 순교자와 무명 순교자 등 300여 명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순교성지 입구에 순교자현양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높이가 4m, 무게만 해도 100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이 옥에 갇.. 2023. 2. 21.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성지와 한옥성당 남한산성은 조선 시대 한양을 지키던 군사적 요새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겁니다. 천주교 최초 박해인 신유박해(1791년)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최초의 순교자(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했습니다. 그 후 병인박해 때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성지는 1999년 지정됐습니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와 무명 순교자 등 300여 명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순교성지 입구에 순교자현양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높이가 4m, 무게만 해도 100t이 넘는다고 합니다. 순교자들이 옥에 갇혀 목에 썼던 칼 모양으로 만들어져 .. 2022. 12. 25.
지친 심신을 내려놓다! 남한산성 한옥성당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성지는 1999년 지정됐습니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와 무명 순교자 등 300여 명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순교성지 입구에 순교자현양비가 있습니다. 이 비는 높이가 4m, 무게만 해도 100t이 넘는다고 합니다. 순교자현양비는 순교자들이 옥에 갇혀 목에 썼던 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양비 앞에 서니 순교자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탄압을 받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종교탄압이 너무 심했습니다. 순교자현양비 앞에는 남한산성 피에타 동상이 있습니다. 피에타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1499년에 만든 세기의 걸작품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시신을 성모마리아가 무릎에 안고 있는.. 2022. 11. 21.
남한산성 한옥마을 야경 나들이 가요~ 요즘 해가 지는 일몰시간이 저녁 6시 50분 무렵입니다. 보통 일몰 후 30분 정도 지나야 어둠이 내리죠. 저는 아내와 저녁을 먹고 저녁 8시쯤 한옥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야경 나들이 하러 간거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장 먼저 간 곳은 지수당입니다. 지수당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입니다. 지수당 앞에 안내문이 있습니다. 읽어보니, 조선 시대(1672년)에 이세화가 세웠다고 합니다. 건립 당시에는 건물 앞뒤로 3개의 연못이 있었는데요, 지수당이 있던 연못은 매몰되고 현재 2개의 연못만 남아 있습니다. 지수당에 조명이 없었는데요, 이렇게 조명을 비추니 너무 아름답네요. 호수에 지수당이 그대로 비춰 더 환.. 2022. 8. 18.
숨겨진 여름 피서지 남한산성 불당리 계곡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에서 342번 국도를 타고 오전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검복리를 지나 우측에 불당리 표지판이 보입니다. 마을 이름이 참 특이한데요, 왜 불당리일까요? 원래 이름은 불당골이었습니다. 불당리에 들어서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우리 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보입니다. 마을 입구에 이렇게 간판을 세워놓은 것이 특이합니다. 입간판을 지나면 불당골 마을의 유래비가 나옵니다. 1608년(조선 선조 약 40년) 검단산 줄기를 타고 산세가 좋아서 불당을 지어놓고 인근 마을 주민들이 불교를 종교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불당골이라고 한 거죠. 그러다 1914년 행정 개편으로 불당리(佛堂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원래 불당리에 사찰이 있었는데요, 병자호란 때 소멸해 없어졌다고 합니다. 불당.. 2022. 8. 9.
병자호란 때 순절한 삼학사를 모신 남한산성 현절사 신록이 무성한 날 남한산성 현절사를 찾았습니다. 현절사 입구에 안내 간판이 보입니다. 현절사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호입니다. 현절사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어서 여기에 차를 세우고 500m 정도 걸어가면 현절사가 나옵니다. 남한산성 안에서도 현절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잠시 오르면 현절사가 보입니다. 현절사 앞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도 있고요. 흑백사진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듯합니다. 현절사는 1688년(숙종14)에 광주유수(지금의 광주시장) 이세백에게 명하여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693년 봄에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 서원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는 일) 됐습니다. 안내판을 읽은 후 현절사로 들어가려니 관.. 2022. 7. 21.
초록으로 물든 남한산성 행궁 풍경 초여름입니다. 한낮에는 벌써 여름처럼 덥지만요, 초록으로 물든 야외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수원에 화성행궁이 있다면 경기도 광주시에는 남한산성 행궁이 있습니다. 광주시는 광주의 자랑이자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은 언제든지 광주시민을 품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궁(行宮)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행궁이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입니다. 능행길에 머물기도 하고 전쟁이나 내란 때 피난처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 16대 왕 인조 때 완공되어 여러 왕이 머무른 공간입니다. 그럼 저와 함께 초록으로 물든 남한산성 행궁으로 힐링하러 가보실까요? 우선 남한산성(사적 제57호)부터 살펴볼까요? 남한산성은 지형이 험준합니다. 이런 자..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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