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무성한 날 남한산성 현절사를 찾았습니다. 현절사 입구에 안내 간판이 보입니다. 현절사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호입니다. 현절사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어서 여기에 차를 세우고 500m 정도 걸어가면 현절사가 나옵니다.
남한산성 안에서도 현절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잠시 오르면 현절사가 보입니다. 현절사 앞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안내판이 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도 있고요. 흑백사진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듯합니다.
현절사는 1688년(숙종14)에 광주유수(지금의 광주시장) 이세백에게 명하여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693년 봄에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 서원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는 일) 됐습니다. 안내판을 읽은 후 현절사로 들어가려니 관리를 위해 문이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담장이 낮아서 안에 있는 사당 건물과 동재(東齋), 서재(西齋) 등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성균관이나 향교, 서원에서 유생(儒生)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명륜당이나 강당 앞 동쪽에 있는 건물은 동재, 서쪽에 세운 건물은 서재라고 합니다.
현절사 외곽은 낮은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고 그 중앙에 대문이 있습니다. 현절사 대문에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충신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삼학사와 김상헌, 정온을 모시고 있는 건물입니다. 사당 건물에는 임금이 내린 현판 현절사(顯節祠)가 걸려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 11권(1681년 1월 30일)에 병자호란의 삼학사와 그 자손들의 보살핌에 관해 논의한 기록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끝까지 우국충절을 지킨 신하들을 임금이 인정해주고 사액을 내려 위로한 것이 현절사입니다. 고종8년(1871년)에 전국 서원 및 사우에 대한 대대적인 철폐령이 내려졌는데요, 현절사는 다행히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죽은 신하를 위해 세운 사당 현절사를 가보니 삼학사의 충절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아니 죽음을 앞에 두고도 절개를 보여준 삼학사의 충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삼학사의 충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요, 이런 분들 때문에 지금 우리가 편하게 사는 거겠죠? 영화와 소설에 나오는 ‘남한산성’ 얘기는 픽션이 아닌 사실입니다. 병자호란 때로 거슬러 올라가 여러분이 인조의 신하였다면 삼학사처럼 충절을 지키며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요? 남한산성에 가시면 현절사를 찾아가 삼학사의 넋을 위로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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