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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비평

‘무릎팍’, 박중훈 충무로의 상징이 되다

by 카푸리 200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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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어제 2부가 방송되었습니다. 박중훈은 코믹 이미지가 강한 영화배우입니다. 배우하면 얼굴이 잘 생겨야 하는데, 박중훈은 솔직히 잘 생긴 얼굴이 아닙니다. 그런데 개성이 넘치는 얼굴입니다. 박중훈이 영화배우를 하려고 충무로를 기웃거릴 때는 얼굴이 잘 생겨야 영화배우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얼굴이 별로였던 박중훈은 당연히 어렵게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는 초지일관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서 한 우물만 파며 준비하게 아니라 가수, 코미디언, 배우 등 연예인이 되는 길이라면 ‘뭐든지 하나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닥치는 대로 지원했습니다.

왕영은이 진행하던 <젊음의 행진>에서 통키타 대행진 특집을 할 때 나갔다가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전유성에게 ‘나가!’ 소리까지 들으며 떨어졌고, KBS 탤런트 응시때는 어울리지 않는 흰색 양복을 입고 오디션에 나갔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공채 코미디언 시험에도 응시했는데 이 역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박중훈은 고등학교때는 오락부장을 장기 집권할 정도로 친구들을 웃기는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었습니다. 대학때는 밤무대에서 트로트 메들리 노래를 부르면서 아줌마팬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후 박중훈은 학교 선배들의 16mm영화를 도와주며 손으로 직접 쓴 명함을 들고 다니며 돌렸습니다. 엑스트라, 단역이라도 좋으니 써달라고 발품을 팔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무작정 영화사로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신문도 돌리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드디어 1986년 기회가 왔습니다.

충무로에서 얼쩡거리다 결국 감독의 눈에 띄게된 것입니다. 그 감독이 바로 영화 <깜보>를 만든 이황림감독입니다. <깜보>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박중훈의 화려한 영화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영화 <깜보>의 주연은 원래 송승환이었는데, 사정상 대타로 박중훈이 출연해 대박신화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깜보>를 처음 촬영한 날인 1985년 11월 11일을 기억할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깜보>는 영화같은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어제 '무릎팍'에서 그의 영화인생을 들어보니 한편의 '인간극장' 같았습니다.

그 이후 박중훈은 <미미와 철수>, <칠수와 만수>, <마누라 죽이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스타> 등 한국 영화의 역사를 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였습니다. 장동건, 김태희, 김혜수 등 영화계 최고 인맥을 자랑하며, 영화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충무로의 성공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중훈에게 배우로서 성공한 것이 꼭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스타덤에 오른 후 계속되는 스케즐에 지쳐 박중훈은 어느날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돈과 명예도 좋지만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스케즐에 어디론가 훌쩍 탈출하고 싶어 떠났던 미국에서 지금의 부인(재일교포 3세)을 만나 로맨스를 키워 결혼을 하게된 것입니다.


지금의 박중훈이 있기까지는 안성기의 힘이 컸습니다. 박중훈에게 안성기란 존재는 아버지같은 존재입니다. 박중훈의 아버지는 10년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안성기를 만날때마다 '우리 중훈이 잘 부탁한다'고 말할 정도로 막내 박중훈이 충무로에서 성공하기를 바랬습니다. 박중훈부친의 바램대로 안성기는 영화멘토처럼 박중훈이 모나지 않고 배우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박중훈은 안성기에 대해 "제 영화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중훈에게 안성기는 시속 80~90 킬로 트럭과 같았습니다. 박중훈은 200 킬로로 가는 스포츠카를 타고 가면서 트럭(안성기) 뒤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과속하지 않고 사고 나지 않고 왔던 것은 안성기 선배가 계셨기 때문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시청률 저조로 폐지된 <박중훈쇼>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대인배 모습이 참 남자다웠습니다. <박중훈쇼>는 그에게 어쩌면 미완성 교향곡인지도 모릅니다.

혹독한 무명시절을 거쳐 '충무로의 상징'이 된 박중훈은 이제 한국 영화의 자존심으로 우뚝 섰습니다. 어제 '무릎팍'에서 밝힌 그의 바램대도 나이가 들어도 사랑받는 노배우로 남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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