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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좋아

진갑용선수가 들려준 한국 야구의 저력

by 카푸리 200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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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는 더 이상 없었다! 일본 선수들은 연신 헛방이질만 해대고 무언가 홀린 듯 했다.
패배가 확정된 후 하라감독과 이치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일전을 지켜본 야구팬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 통쾌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라감독과 이치로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한국 야구팀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문제는 한마디로 ‘이것이다!’라고 단정짓기 힘들다.

WBC 야구를 그저 즐겁게 지켜보고 있는 미국 야구팬들이 한국야구를 ‘도깨비 야구’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 필자는 동의를 못한다. 한국야구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서 얻은 4강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갖고 있지만 못한 끈끈한 정으로 똘똘 뭉친 ‘형제야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형제는 피를 나눈 사이다. 그만큼 형과 아우는 스스럼이 없으며 형은 동생을, 동생은 아우를 서로 이끌고 밀어준다. 이런 형제들을 믿고 맡기며, 늘 자상한 성품으로 지도하는 아버지같은 김인식감독의 리더십은 일본전에서도 위기때마다 더욱 빛났다.

작년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 우리나라가 전승으로 결승에 올라 아마 야구 최강 쿠바까지  우승했을 때 포스마스크를 벗고 정대현 투수에게 다가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르던 선수가 바로 진갑용선수이다. 그는 주심에게 항의를 하다 석연치 않은 퇴장을 당한 강민호선수를 대신해 포스마스크를 썼다. 진갑용에게 한국야구의 올림픽우승은 다른 그 어떤 선수보다 벅찬 감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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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 선수가 부산 모 향토사단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그때 진갑용선수를 부하로 데리고 있던 A중대장이 필자의 후배다. 진갑용선수가 올림픽 우승후 그 중대장을 인사차 찾아갔을 때 필자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을 했다. 그때 진갑용선수가 들려준 한국 야구팀의 저력은 한마디로 ‘형제야구’ 였다.

서양과 달리 우리 한국은 동양 특유의 끈끈한 혈연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외국대회에 출전할 때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잠자리다. 메이저리거가 포함된 미국과 멕시코 등은 통상 1인 1실을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2인 1실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경비절약 차원도 있지만 군대시절 고참-신참 전우조 짜듯이 방을 배정하기 때문에 선후배간에 돈독한 정은 물론 고참 선수가 후배선수들을 지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미국선수들과 메이저리그급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는 다른 나라는 모두 1인 1실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만큼 '개인주의'가 기본 베이스라는 얘기다. 일본도 물론 동양권 나라지만 한국선수들에게 비해 선수들간 단합과 단결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이치로 등 메이저리거들이 후배선수들을 한국의 고참 선수들만큼 잘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가난했던 사람이 갑자기 돈을 벌었으면 없는 사람 잘 쳐다보지 않듯이 후배들에게 눈 길도 잘 주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모래알같은 팀이다.

이런 팀 분위기 때문인지 한일 양팀의 야구감독이 팀컬러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김인식감독은 한 집안의 아버지처럼 편안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능력을 믿고 맡겨둔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소신껏 경기한다.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에 부담이 없다. 야구라는 것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심리적인 면이 많이 작용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미 일본은 심리전에서부터 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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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 하라 감독은 엄한 아버지 같다. 하라 감독 자신이 일본 야구 강타자 출신인데다 요미우리라는 최고팀을 이끌고 있어서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프로는 프로답게, 프로답지 않은 선수는 하라 감독 밑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선수들은 단 한 번의 실수라도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래서 더 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오늘 한일전 4강 대결에서 일본이 1회말 저지른 에러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속에서 나온 실책이다. 이 실책 하나가 결국 한일전의 승부를 가른 단초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진갑용선수가 들려준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 비화 한가지를 소개한다. 당시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9회말 1사 만루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김경문감독은 투수교체를 고려했다. 포수마스크를 쓰고 있던 진갑용은 김경문감독에게 정대현을 추천했다.

그런데 김감독은 진갑용의 추천대로 정대현을 구원투수로 내보냈다. 진갑용은 진짜 정대현이 나오자 “아차~! 실수했다. 이거 정대현 때문에 지면 모든 책임이 다 내게로 돌아오는데, 큰일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진갑용선수는 쿠바의 9회말 마지막 공격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다고 한다. 결과가 좋았길래 망정이지, 만약 잘못되었더라면 진갑용은 두고 두고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을 것이다. 진갑용 선수는 오늘 한일전을 보면서 역시 한국의 '형제야구'가 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기분 좋은 한일전 승리로 퇴근후 기분 좋은 한 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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