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가끔 촌철살인의 자막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곤 했습니다. 예능 프로가 시사성 있는 자막, 그것도 MBC 클로징 멘트만큼 힘없는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은 오직 '무도' 김태호PD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예능 프로에서 이런 자막을 한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이번주 무도가 방송한 것은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이었습니다. 단순히 미국 FOX에서 방송되던 미니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를 패러디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청했습니다. 맴버들이 죄수와 형사로 나뉘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는데, 죄수들이 박명수 등에 적힌 암호를 해독해서 찾아간 곳은 남산 시민아파트, 동대문구 창신동 연예인 아파트, 그리고 김포공항 옆에 위치한 강서구 오쇠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송후 연예인아파트가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무도 촬영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촬영지 3곳이 어떤 연관이 있나 생각해보니 먼저 지역이 노후화된 곳, 즉 철거 예정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방송에서 이곳의 화면이 보일 때마다 화면 뒤쪽으로 슬쩍 슬쩍 보이던 철거 항의 플랫카드를 보면서 김태호PD가 어떤 목적으로 이 패러디물을 제작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죄수들이 가장 먼저 찾아갔던 중구 회현동의 남산 시민아파트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골동품 아파트같습니다. 방송에서 안전 문제 때문에 곧 철거된다고 여러번 나왔었는데, 오갈 데 없는 거주민들 때문에 철거가 차일 피일 미뤄지다가 곧 철거될 것 같지만 오갈데 없는 서민들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이곳은 오래된 아파트와 서민들의 체취가 그대로 살아있어서 영화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높고, 사진좀 찍는 사람들에게 출사장소로 인기가 좋은 지역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은 곳입니다.


요즘은 ‘무단 사진 촬영금지’ 간판도 많이 붙어있고, 관리사무소에서도 사진 촬영하는 것을 제지하고 있습니다. 거주 주민들에겐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사진 찍히듯 기분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파트 주변에 CC-TV까지 설치돼 있습니다. 남산시만아파트의 느낌은 이제는 수명이 다해가는 오래됐지만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모습과 너무 낡아서 그냥 방치돼 버린 폐허의 느낌이 나는 곳입니다. 수년간 철거 한다고 해놓고 계속 철거를 못한 이유는 바로 보상때문입니다. 이곳을 떠나 조그만 보금자리 마련할 수 있는 돈을 주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는데, 보상금이 턱없이 적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일명 연예인아파트는 1965년에 완성된 아파트로 벌써 40년이 훌쩍 넘은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당시에는 연예인들만이 살았을 정도로 럭셔리한 아파트였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온데간데 없고 이젠 길고양이와 서민들만 사는 서울 한복판의 슬럼가가 되었습니다. 이곳에 80년대 고 이주일씨등 유명연예인들이 많아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역사만 남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회현동 시민아파트(시범아파트), 정릉 3동의 ‘스카이 아파트’와 더불어 많은 영화와 광고를 찍었던 곳입니다. 동대문 연예인아파트는 영화 세븐데이즈를 찍었던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맴버들이 돈가방을 찾은 곳 강서구 오쇠동은 김포공항 활주로 32번의 접근로 상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오쇠동에 불행이 시작된 것은 1992년 김포공항 옆에 위치한 탓에 공항시설구역으로 지정되어 이 지역의 철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실질적인 명목은 골프장(9홀) 건설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외쇠동 주민들은 낮은 보상비(300만원)로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김태호PD가 300만원이 든 돈가방을 김포 오쇠동에 숨겨둔 이유는 바로 오쇠동 지역 철거민의 낮은 보상금 300만원을 패러디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PD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이런 아픔이 있는 반면에
이곳은 비행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항공기 사진 출사 포인트가 되는 곳입니다. 항공기 이착륙시 가장 사진찍기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지도 검색으로 '오쇠삼거리'를 치면 김포공항 옆의 오쇠동 지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이번주 '무도'에서 박명수 등 죄수들이 돈가방을 찾기 위해 찾아갔던 곳입니다. 박명수 말대로 이미 거의 철거가 된 상태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주 '무도'에 나온 세 지역은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건물들입니다. 이곳에 살던 어린 아이들이 이 다음에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편을 다시 본다면 ‘그 때 어렸을 적우리가 저기 살았는데...’ 하고 추억속에서나 떠올릴 지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억은 매우 아픈 추억이 될 것입니다.

김태호PD가 죄수들에게 돈가방을 찾으라 하고 아무 곳이나 선정하지 않고 이런 곳을 선정한 이유는 뭘까요? 바로 금년초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올해 1월 20일 용산지역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민 5명이 불쌍하게 죽었습니다.
용산 참사 당시 희망을 잃은 아주머니, 노인들의 선한 눈망울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어제(20일)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가 정부 사과를 요구하며 한강대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는데, 3명이 연행되는 등 또 다시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김태호PD가 우연히 철거지역만 골라 촬영을 한 것일까요? 그가 남산 시민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김포 오쇠동 지역에서 촬영한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제 무한도전을 보면서 다른 시청자들은 재미로 보셨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김태호PD가 화면속에 담아내려 했던 연출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역시 김태호PD였습니다.

Posted by 카푸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숨어있는 1인치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군요
    어제 프로그램 보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감춰진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글을 읽으며 명확해졌습니다.
    이런식의 변화들, 적어도 김태호 피디같은 저항의 방식이
    굉장히 주목할만 하더군요. 저는 며칠전 어느 만화가의 전시를 봤는데
    이 전시또한 만화를 통해 현 정권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또 배우네요.

  3. 들릅니다 2009.06.21 12:3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남산시민아파트에서 예측은 하였지만,,
    오쇠동에 그런 아픔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정말 볼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무한도전

  4. 이런거 방송으로 보내면 뭐하나요?

    사람들이 알아도..'아 그런가보구나. 피디가 천재구나' 하고..끝...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음.

    행동없는 양심은 썩은 쥐와 다를바 없다.

  5. 두목곰 2009.06.21 13:3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MB정권 이후 워낙에 어수선하다보니 이제는 무감각 해져버려, 그런 뉴스나 기사를

    봐도 잠시 발끈할뿐 금새 잊어버렸었습니다.

    어제 참 오래간만에 무도를 보았는데, 남산 아파트를 보면서 그런 속 깊은 사연은

    모르지만 남산과 종묘를 잊는 서울시내 녹지조성에 관한 기사를 본적이 있어

    그 기억을 떠올리며 보았더랬죠. 오세훈이가 MB따라 전시행정에 열을 올리는구나

    라고만 적개심을 갖었을 뿐인데..

    좋은 방송과 즣은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6. 저도 남산시민 아파트에서 플랜카드가 살짝 보일 때부터 김태호PD의 의도가 짐작이

    가더군요. 그리고 이어지는 연예인 아파트와 오쇠삼거리를 보고 확신했어요. 아무

    튼 '프리즌 브레이크 특집'이라는 이름 하에 저런 내용을 집어넣을 수 있다니...생

    각보다 오래 준비하고 공들인 작품인 것 같아요. 그리고 왜 굳이 300만원일까하고

    좀 의아해했는데 그 액수가 철거민 보상액이었다니. 처음 알았네요.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7. 카페에 담아갑니다 시민아파트 말고는 잘 몰랐는데
    깊은의미의 정보 감사합니당

  8. 그런 뜻이 있었군요. 2009.06.21 19:4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저는 모르고 그냥 웃기만 했는데.......

  9. 김태호 2009.06.21 20:0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몇가지 사실 오류가 있어 알려드립니다.
    오쇠동은 김포시 오쇠동이 아니라, 강서구 오쇠동입니다.
    그리고 용산 참사는 지난해가 아니라 2009년 1월 의 일입니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10. 똥운하 2009.06.21 20:2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아마 300만원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죄수인 것도
    그리고 그들을 잡아야 하는 것이 경찰인 이유도
    다 의미심장한 것이겠죠. 철거지에서 삼백만원 때문에 이리저리
    쫓겨다녀야 하는 서민의 생활...

  11.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조목조목 해설해주는글 읽으니... 조금 소름끼치네요.
    항상 즐겁게 보는 무도 입니다...

    분석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12. 미안해 2009.06.21 22:3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보면서..웃으면서 생각하게 만들다니..이시대의 해학꾼

  13. 예능 프로에 2009.06.22 00:0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그런 뒷얘기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14. 좀비들의 세상 2009.06.22 00:0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남산시민아파트나 동대문아파트(연예인 아파트) 보면서 영화촬영장소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만 하고 보다가, 오쇠동에서 찮은이형이 우물찾을 때 그곳 주민에게 질문하는 장면 보고....헉!! 했습니다. 너무 초췌한 모습에 할아버지가 다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나오면서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이전의 촬영장소인 두 아파트를 그냥 영상속의 배경으로만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럽더군요....

  15. 나지롱 2009.06.22 00:3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음 박명수씨 등에 있는 그림은 시민아파트였고,

    밑에 있는 숫자부분이 101, (6X50), 2루트4 였던가요?
    6곱하기 50은 300이니... 6인 가족에게 300만원주고 철거한 사례가 있음을 얘기하는지도 모르겠군요.

    101은 오쇠동 26가구의 주민수??

    루트4면 2고 , 2를 곱해도 4고... 숫자 보다는 루트(뚜껑?지붕)의 의미를 두고 본다면 오쇠동 철거시의 사망자 4인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뭐 다음주에 조금이라도 힌트가 나올런지 모르지만 숫자를 오쇠동 기사에 있는 숫자와만 맞추어 보았습니다.

  16. 보면서 소름돋을정도로 대단한 피디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어렴풋이 "철거대상 아파트로 관심을 집중시키려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300만원이 철거민들의 거주비용인줄은ㅠㅜ


    정말 김태호피디 존경합니다

  17. 비밀댓글입니다

  18. 촬영 배경이 된 장소가 석연치않다 싶어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역시 김태호 PD다 싶던데 한편, 좀 걱정도 되더군요. 요 몇주 너무나 노골적이여서...어쨋든 용기있는 행동, 지지합니다.

  19. 항상 화려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는 '방송' 보다는 서민들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보여주는 '방송'.

    그것도 다른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 그 힘든 주제를 살며시 녹여버리는...

    정말 멋지십니다. 이건 능력이죠.

    무한도전을 보고 이러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이렇게 방송을 보면서 웃으면서 편안히 쉴수 있다는것...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되네요.

  20. 티비로만 볼때는 그냥 추측만 했었는데, 여기와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

  21. 이주길 나올때 대충 눈치는 챘는데 직접 그 의미를 보니 안타깝네요...
    저 아파트가 마치 홍콩영화에나오는듯한 아파트 같아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저런 아픔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