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어느 곳에 살더라도 사찰이 참 많은데요, 조선 시대 왕실의 안녕을 빌던 사찰을 찾았습니다. 남양주시에 있는 절인데요, 왕실의 안녕이 곧 국태민안(國泰民安)이기 때문이죠. 그럼 일상에 지친 마음까지 푸근하게 해주었던 흥국사로 저와 함께 가보실까요?
흥국사는 남양주시 별내 덕능마을에 있습니다. 일주문(一柱門)은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사찰 일주문은 단청이 돼 있는데요, 여기는 목재 모습 그대로입니다. 일주문에는 한문으로 '興國寺'(흥국사)라고 쓰여 있네요.
일주문을 지나 흥국사 경내 좌측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휴일이라 그런지 차량이 많았습니다. 제가 일요일 오전에 방문했는데요, 사찰을 둘러보다 보니 법회 시간이라 불자들이 많이 왔습니다.
사찰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대방(大房)'이라는 전각입니다. 이름이 좀 생소하죠? 대방은 일반적으로 승려들이 모여 식사하거나 생활하는 큰 방을 의미합니다. 흥국사 대방은 이름 그대로 너무 커서 그런지 사찰 전각이라기보다 궁궐에서 보는 건물 같습니다. 양쪽 툇마루 아래 받침 기둥이 나무가 아니고 궁에서나 사용되는 석조 화강암으로 되어 있습니다.
흥국사 대방(등록문화재 제471호, 1878년 무렵 건립)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대방 현판은 흥선대원군 친필이라고 하는데요, 명필입니다. 흥선대원군 글씨는 전각마다 등장합니다. 대방은 궁궐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다듬은 돌을 사용했습니다. 대방은 염불 수행 공간과 누, 승방, 부엌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춘 독특한 형식의 복합 법당입니다. 사찰의 대방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흥국사 대방은 19세기 말 한국 불교의 특성을 담고 있어서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전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됩니다.
대방에서 왼쪽으로 올라가 봅니다. 깊은 산속의 암자처럼 규모가 작은 사찰이라 언덕이 있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대방 옆으로 돌아가면 종무소(응향각) 그리고 그 뒤로 영산전과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종무소 옆에 기와 불사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1만 원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적어 기와 한 장을 부처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그 바람을 부처님이 들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많은 불자가 가족의 안녕과 건강, 행복 등 바람을 적어 기와를 불사했습니다.
종무소에서 안쪽으로 가면 영산전이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나타내고 있는 법당입니다. 이곳에 석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여러 불화가 있습니다. 이 불화들은 1892년(고종 29)에 봉안되었습니다. 영산전 주련(柱聯) 글씨 역시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입니다. 사찰 전각 기둥을 보면 글씨가 쓰인 것을 볼 수 있죠. 주련은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문구입니다.
영산전 앞에 있는 흥국사 연혁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읽었습니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에게 출가한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훗날 이 딸이 건강을 잃은 아버지 태조를 위해 약사여래를 만들어 정릉의 봉국사에 모시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덕분인지 태조의 병이 완쾌되었고, 이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졌습니다. 이런 연유로 흥국사는 지금도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이 찾아와 치성을 드린다고 하네요.
영산전 오른쪽에 이름 그대로 웅장한 대웅보전(大雄寶殿)이 나옵니다.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그 위에 전각을 세웠습니다. 대웅보전 좌측에도 안내판이 있습니다. 흥국사는 흥국사 의미는 '나라가 흥하길 기원하는 사찰'입니다. 신라 진평왕 21년(599년)에 원광법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입니다. 원광 스님은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만든 것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입니다. 원래 이름은 수락산 아래 있어서 '수락사'(水落寺)라 했는데요, 그 후 선조가 그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원당을 이 절에 건립하고 흥국사 편액을 하사해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대웅보전 안을 들여다보니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이 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것이라고 하네요. 18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 상정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에서 가장 화려한 광배를 가진 불상입니다. 그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웅보전 뒤에 만월보전(滿月寶殿)이 있습니다. 석축 위에 지어진 건물로 사찰 건물로는 드물게 육각형입니다. 저는 육각형 전각을 처음 봅니다. 육각형 각 변의 길이는 2.3m라고 하네요. 지붕 가운데 기와로 된 항아리 모양의 장식이 있습니다. 이것도 특이합니다. 지붕의 여섯 귀에는 각각 2~4개의 장식 기와가 있습니다.
만월보전 안에는 태조 이성계의 딸과 약사여래의 일화가 담긴 약사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뭔가 다릅니다. 다른 사찰에 있는 불상은 보통 금색이잖아요. 여기는 하얀 색이라 신기했습니다. 약사여래 뒤쪽에도 앙증맞은 약사여래가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기도하면 낫는다고 하니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단하각(丹霞閣)은 일반 사찰의 산신각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안에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산신이 호랑이 옆에 있습니다. 호랑이는 산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잖아요. 그런데 호랑이가 산신 옆에서 얌전히 있네요.
단하각 우측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3층 석탑이 있습니다. 경주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 같지 않나요? 제가 갔을 때 불자들이 탑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요?
만월보전에서 석축을 내려오면 시왕전이 나옵니다. 이곳에 지장삼존상과 기타 존상들이 있습니다. 저는 불자가 아니라 부처님상을 보면 다 그게 그거 같은데 다 특징이 있나 봅니다. 시왕전 등 모든 전각에는 불자들이 시주한 쌀 등이 놓여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덕혜당(공양간)입니다. 출입구 옆에 '공덕은 맑고 물 같고 지혜는 밝은 달 같네'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불자들이 공양하는 곳이죠. 점심 시간에 맞춰 오면 정갈한 사찰 음식을 공양받을 수 있습니다.
남양주시 별내 흥국사는 규모는 작지만, 역사는 오래된 사찰입니다. 대방뿐만 아니라 대웅보전과 영산전, 영산전의 불상, 시왕전의 불상 등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각 전각에 걸린 불화도 모두 조선 후기 흥국사의 번창기 때 그려진 것입니다. 조선 시대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했는데요(숭유억불 정책) 남양주에 조선 왕실의 안녕을 빌던 사찰이 있다니 특이합니다.
흥국사를 돌아보는 동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고즈넉했던 사찰입니다. 흥국사 근처에 덕흥대원군 묘와 재실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의 안녕을 빌던 흥국사에서 여러분 가정의 안녕을 비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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