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4대 왕 세종대왕(1397~1450)은 왕후 소현왕후 심 씨 외에도 많은 후궁을 두었습니다. 그중의 한 명이 신빈 김 씨입니다. 김 씨는 궁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공급하는 관청인 내자시(內資寺, 호조에 속한 관서)의 여종이었습니다. 이렇게 궁에서 일하는 여종을 무수리라고 했죠. 무수리는 고려 및 조선 시대 궁중에서 청소 등을 비롯하여 세숫물 떠드리기 등 허드렛일을 맡았던 여자 종을 말합니다.
신빈 김 씨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신빈 김 씨는 내자시에 일하면서 부지런하고 똑똑했습니다. 같은 무수리라도 눈에 띄게 똘똘했던 거죠. 그래서 세종대왕이 즉위한 후 세종의 모친 원경왕후가 당시 13살이던 김 씨를 뽑아 소현왕후 심 씨의 몸종으로 보냈습니다. 특히 소현왕후가 낳은 막내아들 영웅대군(세종이 제일 귀여워했다는 아들)의 유모가 되어 영웅대군을 맡아 길렀습니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 김 씨는 자주 세종대왕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세종대왕의 승은(承恩)을 입게 되었는데요, 궁중 무수리가 승은을 입게 되면 하루 아침에 신분이 바뀌게 됩니다. 위에서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종4품 숙원(淑媛)으로 품계를 받습니다. 김 씨는 세종대왕과의 사이에 6남 2녀를 낳아 정2품 소의(昭儀)까지 승진했고요, 세종 21년에 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1품 빈(嬪)이 되었죠. 내자시 무수리에서 일약 정1품 빈이 된 신빈 김 씨는 조선판 신데렐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극을 보면 왕후와 후궁 사이가 좋지 못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후궁 하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빈 김 씨의 경우 소헌왕후 심씨와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또한 세종과의 사이에서 모두 8명의 자녀를 낳는 등 세종의 사랑을 받았기에 신빈 김씨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처신을 잘했기 때문에 후궁의 최고 품계까지 오른 겁니다.
조선 시대 훌륭한 문관, 무관 못지않게 세종대왕의 큰 사랑을 받은 신빈 김씨 묘가 경기도 화성시에 있어서 찾아가 봤습니다. 주차장은 따로 없고요, 입구에 승용차 2~3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에 차를 세우고 관람하시면 됩니다.
신빈 김 씨 묘는 경기도 화성시청 인근에 있습니다. 경기도 기념물 제153호입니다. 묘에 도착하면 홍살문이 있는데요, 홍살문(紅살門)은 능(陵)·원(園)·묘(廟)·궁전·관아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을 말합니다. 보통 왕릉이나 서원 앞에 많잖아요. 왕의 후궁 묘 앞에 홍살문까지 세운 것을 보면 그만큼 왕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이었다는 거겠죠. 홍살문을 지나면 신빈 김 씨 묘역 안내판이 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화성 남양리 신빈 김 씨 묘역 표석이 있습니다. 신빈 김 씨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153호입니다. 그 앞에는 제사를 지내는 전각이 있습니다. 문이 잠겨 있어 안은 볼 수 없었지만, 왕릉에서 봤던 제향공간처럼 정갈했습니다. 홍살문과 제향 공간 등은 비교적 최근에 세운 것으로, 애초에 묘역은 봉분과 석물, 신도비만 있었다고 합니다.
제향공간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 감싸고 있는 신빈 김 씨 묘가 있습니다. 봉분을 중심으로 넓은 곡장과 함께 봉분의 중앙에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있습니다. 좌우에 문인석 1쌍까지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서 곡장(曲墻)은 왕이나 세자, 고관대작 등의 무덤 뒤 주변으로 쌓은 담을 말하는데요, 신빈 김 씨 묘에도 곡장이 있습니다.
왕릉이나 고관대작 묘에 꼭 있는 장명등인데요, 장명등 구멍으로 신빈 김 씨 묘역을 보니 SNS에 올릴 사진 각이 나옵니다. 장명등 앞 잔디에 앉아 봄 햇볕 쐬기도 좋습니다. 북적거리는 곳보다 이런 고즈넉한 곳이 좋으니 나이 들었나 봅니다.
문인석을 보니 다른 곳과 달리 해학적인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봐왔던 문인석은 정중하고 뭔가 엄숙해 보였는데요, 신빈 김 씨 묘역 문인석은 익살스러운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묘 오른쪽에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안에 신도비가 있습니다. 신빈 김 씨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해 놓았는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글자가 잘 보이지 않네요.
신빈 김 씨 묘역에서 보니 남양리 일대가 한눈에 보입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일홍(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죠. 아무리 권력이 강하다 해도 오래 가지 못하죠. 신빈 김 씨는 일약 조선판 신데렐라가 됐지만, 항상 겸손하게 살았다니 그 점은 지금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후에도 평가가 좋은 거죠.
신빈 김 씨는 세종대왕이 승하한 후 불가에 귀의해 59세로 여생을 마쳤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세조는 쌀과 콩 70석을 부의금으로 줄 만큼 각별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후궁 중 많은 여인이 승은을 입고 하루아침에 출세했지만요, 신빈 김 씨처럼 최고 품계인 정1품까지 오른 인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조선판 신데렐라 신빈 김 씨 묘역을 꼭 한번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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