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천년고찰 봉녕사는 비구니 사찰인데요, 정갈하고 고즈넉해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마다 찾습니다. 올해는 마음보다 아내와 봄 풍광을 즐기러 왔습니다.
봉녕사 입구에 일주문이 있습니다. 일주문에 한문으로 ‘광교산봉녕사(光敎山奉寧寺)’라고 쓰여 있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일주문을 들어설 때마다 뭔가 세속의 번뇌를 벗어던지는 기분이 듭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봉녕사로 걸어가는데요, 길옆에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 시가 생각났습니다. 진달래를 보니 이제 봄이 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봉녕사에 도착하니 경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겨우내 갈색이던 경내가 조금씩 푸른 빛을 띱니다. 그리고 생강꽃, 목련 등 봄꽃도 어느새 만개했습니다. 제가 갔던 날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요, 봉녕사는 도심이 아니라 깊은 산속 풍경처럼 보였습니다.
봉녕사에서 가장 유명한 금빛 석가탑이죠. 한문으로 ‘佛’이라 쓴 바위가 뒤에 있습니다. 바위 위에는 금색으로 칠해진 탑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 진신사리 9과를 모신 ‘연기’라고 합니다. 안내판을 보니 1959년에 인도에서 모시고 온 것이라고 합니다.
석가탑 옆에 있는 범종루입니다. 여느 절에는 범종만 있는데요, 여긴 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四物)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4가지 법구(法具)인 사물(四物)에는 종(鐘)・목어(木魚)・운판(雲版)・법고(法鼓)가 있습니다.
범종루 앞에 금라(金羅) 문화원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도심에 있는 카페 같은 분위기입니다. 불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벗고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이 건물은 평소 다양한 교양 강좌와 예술 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불교 신도들이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죠.
봉녕사 전각 중 대적광전은 일반 사찰의 대웅전과 같은 곳입니다. 단청과 기와가 어우러져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금빛 부처님 세 분이 계시네요. 천정에는 수많은 불자의 바람이 적힌 연등이 있습니다. 법당 내외부 벽에는 80권 화엄경에 따라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설법 장면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적광전 앞에 매화가 만개했습니다. 여기서 봉녕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역사를 잠깐 살펴볼까요. 봉녕사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원각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말사입니다. 1971년 비구니 묘전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고 묘엄 명사께서 주석하시면서 쇠퇴하던 봉녕사를 비구니 승가 교육의 요람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신축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역사가 그리 오래된 줄은 몰랐습니다.
대적광전 옆에 800년이 넘은 보호수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보호수 지정 안내판을 보니 2007년 5월에 지정됐으니까 816년 된 향나무입니다. 높이 9.4m에 둘레는 2.8m입니다. 수원의 수호신 나무일지도 모릅니다.
대적광전 우측에 용화각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석조여래좌상 1구와 석조보살입상 2구가 봉안되어 있는데요,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대웅보전 뒤에 건물을 지으려 공사를 하다 발견됐다고 합니다. 돌로 만들어진 석조 삼존불은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났습니다.
약사보전입니다. 여기도 전각 앞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하얀색의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측에 신중단, 현왕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단, 영단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신중탱화, 현왕탱화는 조선 시대 제작한 것이고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봉녕사는 이 외에도 스님들 수행 공간인 육하당, 향하당, 청운당 등의 전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출입이 불가한 곳입니다. 출입은 되지 않지만 멀리서 전각 모습은 볼 수 있습니다. 사찰을 전부 둘러보며 산책하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립니다. 스님 수행 공간이기 때문에 사찰 내에서는 정숙을 유지해주셔야 합니다.
봉녕사는 수원 시민들이 자주 찾는 도심 속 힐링 사찰입니다. 언제 가더라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사찰입니다. 초록초록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도심 속 천년 사찰 봉녕사에서 봄날 힐링 나들이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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