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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비평

‘무도’ 촬영지 비화는 철거민의 아픔이었다

by 카푸리 2009.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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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은 가끔 촌철살인의 자막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곤 했습니다. 예능 프로가 시사성 있는 자막, 그것도 MBC 클로징 멘트만큼 힘없는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은 오직 '무도' 김태호PD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예능 프로에서 이런 자막을 한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이번주 무도가 방송한 것은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이었습니다. 단순히 미국 FOX에서 방송되던 미니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를 패러디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청했습니다. 맴버들이 죄수와 형사로 나뉘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는데, 죄수들이 박명수 등에 적힌 암호를 해독해서 찾아간 곳은 남산 시민아파트, 동대문구 창신동 연예인 아파트, 그리고 김포공항 옆에 위치한 강서구 오쇠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송후 연예인아파트가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무도 촬영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촬영지 3곳이 어떤 연관이 있나 생각해보니 먼저 지역이 노후화된 곳, 즉 철거 예정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방송에서 이곳의 화면이 보일 때마다 화면 뒤쪽으로 슬쩍 슬쩍 보이던 철거 항의 플랫카드를 보면서 김태호PD가 어떤 목적으로 이 패러디물을 제작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죄수들이 가장 먼저 찾아갔던 중구 회현동의 남산 시민아파트는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골동품 아파트같습니다. 방송에서 안전 문제 때문에 곧 철거된다고 여러번 나왔었는데, 오갈 데 없는 거주민들 때문에 철거가 차일 피일 미뤄지다가 곧 철거될 것 같지만 오갈데 없는 서민들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이곳은 오래된 아파트와 서민들의 체취가 그대로 살아있어서 영화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높고, 사진좀 찍는 사람들에게 출사장소로 인기가 좋은 지역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은 곳입니다.


요즘은 ‘무단 사진 촬영금지’ 간판도 많이 붙어있고, 관리사무소에서도 사진 촬영하는 것을 제지하고 있습니다. 거주 주민들에겐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사진 찍히듯 기분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파트 주변에 CC-TV까지 설치돼 있습니다. 남산시만아파트의 느낌은 이제는 수명이 다해가는 오래됐지만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모습과 너무 낡아서 그냥 방치돼 버린 폐허의 느낌이 나는 곳입니다. 수년간 철거 한다고 해놓고 계속 철거를 못한 이유는 바로 보상때문입니다. 이곳을 떠나 조그만 보금자리 마련할 수 있는 돈을 주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는데, 보상금이 턱없이 적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일명 연예인아파트는 1965년에 완성된 아파트로 벌써 40년이 훌쩍 넘은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당시에는 연예인들만이 살았을 정도로 럭셔리한 아파트였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온데간데 없고 이젠 길고양이와 서민들만 사는 서울 한복판의 슬럼가가 되었습니다. 이곳에 80년대 고 이주일씨등 유명연예인들이 많아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역사만 남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회현동 시민아파트(시범아파트), 정릉 3동의 ‘스카이 아파트’와 더불어 많은 영화와 광고를 찍었던 곳입니다. 동대문 연예인아파트는 영화 세븐데이즈를 찍었던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맴버들이 돈가방을 찾은 곳 강서구 오쇠동은 김포공항 활주로 32번의 접근로 상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오쇠동에 불행이 시작된 것은 1992년 김포공항 옆에 위치한 탓에 공항시설구역으로 지정되어 이 지역의 철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실질적인 명목은 골프장(9홀) 건설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외쇠동 주민들은 낮은 보상비(300만원)로 쫓겨나다시피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김태호PD가 300만원이 든 돈가방을 김포 오쇠동에 숨겨둔 이유는 바로 오쇠동 지역 철거민의 낮은 보상금 300만원을 패러디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PD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이런 아픔이 있는 반면에
이곳은 비행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항공기 사진 출사 포인트가 되는 곳입니다. 항공기 이착륙시 가장 사진찍기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지도 검색으로 '오쇠삼거리'를 치면 김포공항 옆의 오쇠동 지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이번주 '무도'에서 박명수 등 죄수들이 돈가방을 찾기 위해 찾아갔던 곳입니다. 박명수 말대로 이미 거의 철거가 된 상태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주 '무도'에 나온 세 지역은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건물들입니다. 이곳에 살던 어린 아이들이 이 다음에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편을 다시 본다면 ‘그 때 어렸을 적우리가 저기 살았는데...’ 하고 추억속에서나 떠올릴 지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억은 매우 아픈 추억이 될 것입니다.

김태호PD가 죄수들에게 돈가방을 찾으라 하고 아무 곳이나 선정하지 않고 이런 곳을 선정한 이유는 뭘까요? 바로 금년초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올해 1월 20일 용산지역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민 5명이 불쌍하게 죽었습니다.
용산 참사 당시 희망을 잃은 아주머니, 노인들의 선한 눈망울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어제(20일)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가 정부 사과를 요구하며 한강대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는데, 3명이 연행되는 등 또 다시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김태호PD가 우연히 철거지역만 골라 촬영을 한 것일까요? 그가 남산 시민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김포 오쇠동 지역에서 촬영한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제 무한도전을 보면서 다른 시청자들은 재미로 보셨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김태호PD가 화면속에 담아내려 했던 연출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역시 김태호PD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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