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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비평

'무릎팍', 안철수의 도전바이러스에 감염되다

by 카푸리 2009.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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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출신의 성공한 벤처 사업가, 컴퓨터 보안업계의 슈바이쩌, 도전의 아이콘, 벤처기업의 신화, 가장 기대되는 CEO 등 안철수씨를 표현하는 말은 무척 많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컴퓨터와 놀기 시작한 지금 청소년중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청소년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기업인입니다.

그가 <무릎팍도사>에 "저의 평생 직업이 뭔지 모르겠어요"라는 고민을 안고 출연했습니다. 방송 출연 기피증이 있는 그를 제작진이 무려 1년 6개월간의 끈질긴 요청 끝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능력과 재주 많은 사람이 어떤 것을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어서 시청하는 내내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주 많은 사람은 출세하기 힘들다는데, 안철수씨는 예외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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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는 공부하는 청소년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서울대, 그것도 의대를 졸업한후 1988년 동대학원 의학과를 다니던 중 우연히 세계 최초의 바이러스 '브레인'과 운명적으로 만나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대신에 컴퓨터 주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이후 안철수씨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가장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과대학 전임강사, 최연소 의예과 학과장까지 지냈지만 백신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를 의사로 살게하지 않았습니다. 백신의 대명사였던 V3를 무료로 업데이트, 보급해오다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1995년 '안철수 연구소' 사장으로 변신해 벤처기업의 성공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S/W업체 최초로 순이익 100억 달성의 신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 나가던 벤처기업 CEO자리를10년간 지켜오다가 만 10년째 되던 날 대표직에서 사임합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MBA 2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해 현재 KAIST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는 보통 사람이 평생을 꿈꾸며 노력해도 한가지도 이루기 힘든 일들을 4가지나 해냈습니다. 의사, 벤처기업CEO, MBA학생 그리고 현재는 교수로 지내고 있지만 이 직업이 언제까지 갈지 안씨 자신도 모릅니다. 그는 늘 도전을 꿈꾸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재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일을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안철수씨의 인생에서는 '편안히 안주한다'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의대 재학시절 그는 의학공부와 컴퓨터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7년간 하루 4~5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의학박사학위도 따고,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습니다. 또한 그는 단 1분의 짜투리 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벤처CEO로 재직할 때도 의자에 앉아 결재만 해도 되지만 그는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손에늘 책을 들고 다니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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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씨에게 공부의 완성은 없었습니다. 항상 현재 진행형입니다. 술, 담배를 안하는 것은 물론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에도 가본 일이 없습니다. 어릴적 부터 몸에 밴 독서습관으로 걸어다니면서도 책을 읽을 정도로 그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였습니다. 한때 바둑을 배우고 싶어 바둑과 관련된 책 50권을 독파했다는 일화는 그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만 졸업하면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던 의사의 길을 과감히 포기한 그의 야망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벤처기업CEO, KAIST석좌교수를 하고 있음에도 끝이 없습니다. 그는 늘 꿈을 꾸며 사는 남자입니다. 어릴을 때 그의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발명의 왕 에디슨처럼 메추리알을 부화시킨다고 가슴에 품고 자다가 깨뜨려버린 적도 있습니다. 늘 책을 통해 배운 이론을 실제 생활고 연관시켜 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워왔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의대에 진학하게된 것입니다.

안철수씨는 다음 '변신'에 대해 자신도 모른다고 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더 의미가 크고 보람과 재미가 있는 일이 닥치면, 혹은 그것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안주에서 벗어나 또 다른 도전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안정적인 의사를 그만둘 때는 6개월, 벤처CEO 자리를 물러날 때는 1년을 고민했습니다. 그만큼 충분히 숙고한 후에 또 다른 일을 결행한 것이며, 그 숙고뒤에는 많은 준비가 항상 따랐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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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원 시절에 개발한 무료 백신 V3정신을 살려 벤처기업을 설립할 때도 두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백신을 계속 무료로 보급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기업체나 관공서 같은 곳에 판매를 해서 벤처기업답게 성장해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97년 회사 창립 2년이 되었을때 세게 최대 백신기업에서 1천만달러를 줄테니 기업을 팔라고 했지만 국익을 생각해서 그는 단호히 "No"를 외쳤습니다. 자신은 돈을 벌수 있지만 국민들은 비싼 백신을 사야하는 것을 그의 양심상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영혼이 있는 기업인이었습니다.

항상 꿈을 꾸며 사는 남자 안철수씨는 언제 강단을 박차고 나올지 모릅니다. 그가 말한대로 지금 하는 일보다 더 크고 의미있는 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기면 그는 강단 대신 또 다른 도전을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으로 봐서 그가 대학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는 벤처기업 성공신화로 우리 경제에도 성공 신화의 화살을 쏘아주길 기대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교수에서 그 다음에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릎팍도사가 "평생 직업을 궁금해하지 말아라"고 처방한 대로 안철수씨의 직업이 바뀌면 바뀔수록 대한민국은 더 윤택해질지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 안철수의 도전바이러스에 감염되보고 싶습니다. 그의 도전바이러스가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을 감염시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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