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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돋보기

조선시대 국장 vs 노대통령 국민장

by 카푸리 2009.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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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 16대 노무현대통령의 국민장이 지난 29일 끝나고 이제 정토원에 잠시 잠들어 계십니다. 서거후 7일간의 국민장 기간중 고향 봉하마을 참배객만 무려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 각지의 추모객을 모두 합치면 500여만명이 분향소를 찾아 노대통령을 추모했습니다.

문득 지난해 영월 동강 사진전에서 본 조선시대 마지막 임금 순종의 국장 사진전이 생각나 노대통령의 국민장과 조선시대 국장을 비교해봤습니다.80여년의 황제 순종과 참여정부 노무현대통령의 국장 모습은 시공간적 차이만 있을 뿐 슬픔과 눈물로 왕과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모습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를 버리고 낮은 곳을 향하던 노대통령의 모습은 이제 사진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모습이 되었지만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 분향과 추모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純宗)은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1926년 4월 25일)로 숨을 거뒀다. 고종에게 전위 받은 지 20년, 일제에 국권을 피탈 당하고 17년의 세월이 흐른 때였다. 순종의 빈전이 있는 창경궁 앞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곡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 16대 노무현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서거하신후 고향 봉하마을에 100만명, 전국 각지의 분향소를 다 합하면 무려 500여만명이 분향을 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발적인 시민들의 추모와 분향 인파는 영결식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 발인식
순종의 발인식은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 치른 국장이라 일본 순사의 모습도 보인다. 상복을 입은 백성들이 상여를 매고 가는 모습속에서 임금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백성들의 슬픔이 묻어난다.
노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서 영결식을 위해 29일 발인식 마치고 운구차량이 마을을 떠나려 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에게 보내는 사연을 적은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장의차량 위로 수없이 쏟아진 것은 국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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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행렬
순종이 발인과 영결식을 마치고 유릉으로 향하는 행렬에 만장기가 펄럭인 채 끝도 없이 백성들이 장례행렬을 뒤따르고 있다. 노대통령도 봉하마을에서 발인제를 마치고 영결식을 위해 서울로 떠나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눈물로 장례차량을 따라가고 있다.

☞ 국장인파
장례식을 마친 순종의 인산행렬이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 단성사앞을 지날 때 황제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나온 수많은 군중 속에서 수천장의 격문이 날아오르며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터져나왔다.
노대통령 영결식은 서울광장에서 50여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눈물과 애도속에 진행되었다. 영결식과 노제가 끝난후 마지막 가는 길은 시민들이 '노무현대통령 사랑해요'라고 소리쳤으며,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는 등 각종 글귀가 적힌 PVC만장이 수없이 펄럭였다.

☞ 장지
장례식후 순종이 잠들 곳(유릉)을 준비하느라 수많은 백성들이 묘자리 공사를 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듯이 한줌 재가 되어 봉하마을 사저에서 약 50여m 떨어진 야산을 장지로 결정했다. 서거하신 후까지 노대통령은 서민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영결식때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 서거후 가장 많이 나온 말이라고 한다. 떠나시고 난후에야 비로소 노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된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불효자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제왕적 이미지를 벗고 소탈한 서민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노무현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게 너무 슬프다.






이 땅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를 헌신짝처럼 버린 당신은 영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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