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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좋아

한음 이덕형 선생이 말년을 보낸 별서터

by 카푸리 202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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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학창 시절 오성과 한음 이야기 배우셨죠? 여기서 오성의 이름은 이항복(李恒福), 한음은 이덕형(李德馨)입니다. 두 분 모두 조선 중기 문신이고요, 조선 최고의 벼슬인 영의정(현재의 국무총리)까지 오른 인물들이죠. 오성과 한음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져 오는데, 오늘은 한음 이덕현 선생 별서터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덕형 선생 별서터는 남양주시 마음정원이 있는 곳에서 운길산 자락 아래 동네로 들어갑니다. 마을 도로 폭이 좁아서 교행이 쉽지 않아 중간에 차를 만나면 뒤로 후진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별서터로 가는데, 사과밭이 있었습니다.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얼마나 탐스럽게 익었던지 한 개 먹고 싶었습니다.

처음 가신다면 내비게이션으로 이덕형 선생 별서터라고 치기 쉬운데요, 이렇게 치면 나오질 않습니다. 별서터는 송촌2리 마을회관과 가깝습니다. 그래서 마을회관으로 와서 이곳에 주차하면 이덕형 별서터 안내판이 보입니다.

이덕형 선생 별서터가 있는 송촌2리는 운길산 자락에 있는 마을로 한음 이덕형 선생이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며, 딸기 수확 및 장담그기 등 각종 전통 체험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을 공연장을 이용하여 수풍음악회 등 문화적 활동을 이어가는 슬로시티 안내판이 마을회관 옆에 있습니다.

마을회관 오른쪽에 이덕형 선생 시비가 있습니다. 시비 내용은 큰 잔에 가득 부어 취하도록 먹으면서, 만고영웅을 손꼽아 헤어보니 아마도 유령 이백이 내 벗인가 하노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덕형 선생은 정치, 군사뿐만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250편이 넘는 한시를 지었다고 하네요.

이제 별서터로 가보겠습니다. 마을회관 오른쪽 길로 약 240m 정도 걸어가는데요, 운길산 아래 송촌2리 마을풍경이 가을을 머금고 있습니다. 밭에서는 고구마 캐기가 한창인데요, 배추와 무 등 김장 채소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마을을 걸어가다 별서(別墅)터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마을회관 옆 한음 선생 시비 안내판에 그 뜻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별서터는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말합니다. 별장과 비슷하지만, 농사를 짓는 점이 다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은퇴 후 낙향에서 살기 위해 지은 집과 비슷합니다. 이덕형은 은퇴 후 고향 양평이 아니라 남양주시 용진에서 말년을 보냈습니다.

한음 이덕형이 낙향에서 살던 곳이 용진 즉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입니다. 슬로시티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옛날 이름은 사제마을로 마을 앞으로는 용진강이라 불리는 북한강이 내려다보입니다. 이곳에 이덕형 선생의 별서터가 있습니다.

자연 속 예쁜 집들을 구경하면서 별서터에 오니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은행나무 옆에 보호수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 나무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늦가을에는 노란 은행잎이 아마 장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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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옆에 이덕형 선생 별서터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에 별서터 역사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이덕형 선생은 말년에 부친을 봉양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경치가 뛰어난 남양주시 조안면에 별서터 대야당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이덕형 선생이 지내시던 별서터 건물은 없습니다. 그 자리만 있을 뿐입니다.

별서터 안내판을 보니 집의 이름은 대야당이라 불렸고 읍수정이로정이라는 두 개의 정자를 지었습니다. 읍수(挹秀)는 주위의 빼어난 경치를 이곳에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남양주시 조안면의 풍광이 좋다는 거죠. 이로(怡老)는 벼슬에서 물러나 만년을 즐기는 의미입니다. 관직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심신을 달래려고 한 거죠.

은행나무 옆에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 이름이 읍수정입니다. 옛날 읍수정을 본떠서 만든 정자인데요, 여름에 이곳에서 쉬면 참 시원하겠습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저는 정자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습니다.

명재상이 심은 은행나무

별서터에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는 이덕형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합니다. 선조 33(1605)에 심으셨다니 400년이 넘었습니다. 한 그루는 한음, 또 한그루는 오성이라 여기며 다시 만나길 간절히 기원하며 심었습니다. 이 나무는 8.15 광복과 한국전쟁 때 웅~웅 하며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오래된 은행나무는 뭔가 신성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은 이런 곳에서 기도하곤 했죠.

수령 400년이 넘다 보니 은행나무는 노쇠한 느낌이 많이 납니다. 시멘트로 줄기를 보강한 흔적이 있지만요, 새순이 돋아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손자가 태어나듯이 말이죠. 여름으로 접어들어 은행나무는 초록초록한 모습으로 싱그럽기만 합니다.

이덕형 선생이 타고 다녔던 말도 있고, 그 옆에 하마석도 있습니다. 하마석은 노둣돌이라고도 합니다. 말에 오르거나 내릴 때 받을 디디기 위해 세워놓은 큰 돌입니다. 말은 모형이지만요, 금방이라도 히힝~ 하면서 막 달려갈 듯합니다.

한음 이덕형 선생 별서터는 운길산역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승용차로 오면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이덕형 선생에 대해 역사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물론 어른들도 한적한 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음 이덕형의 별서터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조선 시대 고관대작은 은퇴 후 낙향하면 좋은 집에서 살기도 했지만요, 이덕형은 청백리답게 소박한 별서터를 짓고 살았습니다. 남양주시에 가신다면 이덕형 별서터를 한 번 들러보시기를 바랍니다.

한음 이덕형 선생 별서터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635-1 67
(송촌2리 마을회관에 주차 후 도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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