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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승승장구', 성동일의 감동적인 배우 철학

by 카푸리 201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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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성동일하면 '추노'의 천지호가 생각난다. 걸죽한 사투리를 써가며 대길(장혁)과 쌍벽을 이루던 악명높은 추노꾼이었지만 의리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추노'가 퓨전사극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장혁과 이다해 등 주연들의 공이 컸지만 성동일, 공형진 등 조연들의 공도 컸다. 성동일을 보면 고생 한 번 없이 배우생활을 해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근심이 보이지 않고 늘 낙천적이다.

그러나 코믹 연기의 달인 성동일에게도 가슴 아픈 시절이 있었다. 무명배우에서 잘 나가는 감초 연기자가 되기까지 성동일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목숨 걸고 연기를 했다. 그에게 연기란 하기좋은 말로 예술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먹고 살기위한 생계수단일 뿐이다. 연기자 선배의 소개로 출연한 '은실이'를 통해 성동일은 '빨간 양말'로 화려하게 떴다. 그리고 돈도 벌었다. 그리고 150평 고깃집도 냈지만 사기꾼에게 속아 꼼짝없이 5억을 날렸다. 얼마나 망연자실했겠는가? 아마 죽고 싶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성동일에게 연기란 먹고 살기위한 생존의 몸부림이었고, 잘난체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성동일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일찍부터 찾아왔었다. 포장마차를 하던 어머니가 너무 힘든 나머지 낙찰계를 가장 먼저 탄 후 자식들에게 운동복과 신발을 사준 후 순대국을 먹고 자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쌍한 자식들을 두고 죽을 수 없었던 어머니를 보며 성동일에게 연기란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성동일의 연기엔 인생의 깊은 표정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일찍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해서인지 '추노'에서 천지호의 죽음은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그 한 장면 때문에 성동일의 주가는 올라갔다. 배우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죽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죽음을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인생의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해본 성동일에게 천지호의 죽음은 어릴적 생활고 때문에 죽으려 했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으니 천지호의 죽음은 당연히 명장면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성동일은 배우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한다. 얼마나 소박한가! 지금쯤이면 주연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욕심을 부릴 만도 한데 그는 이 순간을 잃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지금의 연기에 만족하며 주연을 빛내주는 역할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주연은 조연들이 빛내주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쉽다. 그런데 조연은 알아서 빛을 내야한다. 그만큼 연기하기가 더 어렵다. 성동일의 연기는 자체 발광이다. 성동일표 연기로 스스로 빛을 내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은실이'에서 영숙씨를 쫓아다니던 빨간 양말의 정팔이도 성동일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얼마 전에 끝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성동일은 무술감독 반두홍도 마찬가지다. 바바라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성냥개비를 물고 주윤발을 패러디한 모습으로 빵 터지는 재미를 주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윤유선의 방귀를 참고, 얼음이 목에 걸린 그녀를 거꾸로 들쳐업는 등 성동일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요즘은 아이돌스타들이 인기가 많다고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다. 아이돌 스타가 '발연기' 논란에 휩싸이는 것도 성동일처럼 인생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연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스타가 되기 위해 고생은 했을지 몰라도 눈물젖은 빵은 먹어보지 못했다. 성동일은 배고품을 아는 배우다. 배우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 헝그리정신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바로 성동일이다. 그 모습이 당당하기 때문에 감독들이 조연캐스팅 0순위로 꼽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추노'에서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모두 천지호였다. '나 언니야 언니...', '나 천지호야!' 그리고 '은혜는 못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다' 비록 원수는 갚지 못하고 죽었지만 천지호의 죽음은 많은 시청자들이 아쉬워하면서 죽지 않게 해달라고 서명운동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그의 연기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지금의 삶에 감사할 줄 알고 허황된 것을 쫓지 않는 겸손함에 있다.

'승승장구' 성동일편은 모처럼 토크쇼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시청률은 비록 '강심장'에 밀렸어도 성동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예술을 하지 않는다'는 성동일의 배우 철학을 들으며 회당 많은 돈을 받아가며 발연기하는 연기자들은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동일의 연기야 말로 진정한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속된 말로 개폼 잡고 허세 부리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성동일의 배우 인생을 보니 한 편의 드라마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진정 배우 중의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성동일이라는 배우, 그 존재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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