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가비평

심수봉, 유신의 심장을 안고 산 30년

by 카푸리 2009. 4. 27.
반응형
가수 심수봉이 데뷔 30년을 맞이했습니다. 1978년 제 2회 MBC 대학가요제 '그때 그 사람'으로 참가했는데 입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학생들은 순수 창작 가요를 대상으로 출전했는데, 트로트를 들고 나온 심수봉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녀가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이유는 입상자에게 음반을 내주었기 때문인데, 기념 음반이라도 하나 낼 마음으로 나갔지 가수가 되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입상도 못한 '그때 그 사람'이 히트하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인기가 너무 하늘을 찌를 듯 해서 데뷔하자 마자 KBS 올해의 신인가수상,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일약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데렐라 운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유신정권 시절인 1979년 궁정동 안가에서 노래를 부르던중 김재규가 박정희대통령을 시해하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유신의 심장을 쏘는 것을 목격한 몇 안되는 증인입니다. 잘 나가던 심수봉은 이 현장에 있었던 것이 가수 인생의 큰 벽이 되었습니다. 10.26사태 여파로 그녀는 방송 출연금지를 당했습니다. 1983년 드라마 주제곡 '순자의 가을'을 자작곡 했으나 당시 '순자' 금지령으로 제목을 '올 가을엔 사랑할 꺼야'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순자, 대머리가 당시에는 방송 출연금지 사유가 됐습니다.

3년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하다가 1984년 방송 출연금지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노래가 바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였습니다. 이 노래도 나오자 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애절하면서도 간드러진 비음으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녹이는 듯 합니다. '사랑밖에 난 몰라', '미워요', 러시아 민요 번안곡 '백만송이 장미' 등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쳤습니다.

그녀는 올해 나이가 54살입니다. 인생의 연륜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를 바꾸어 놓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신인 가수시절 방송 출연을 금지를 당하는 등 보통 가수들이 걷는 길과는 다르게 살아왔습니다.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생 자체도 순탄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심수봉 집안은 가족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어서 어릴 때부터 조부모, 부모 들의 음악적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피리 명인, 할아버지는 중고제의 대가, 아버지는 민요수집가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고 어머니 또한 가무에 능해서 음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세살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울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두번 째 남편과 이혼을 하는 등 사춘기 시절 방황도 했습니다.

심수봉은 한방송사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에 나약함, 위로가 배어 있고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불우했던 환경과 연민이 길러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10.26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누군가를 갈구하고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뭔가 애잔하면서도 여자를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이 일어나게 합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심수봉은 수준 높은 자작곡을 하는 싱어송 라이터입니다. 트로트 가수로서 자작곡을 하는 사람은 우리 가요계에 흔치 않습니다. 실력도 갖추고 노래도 잘 부르지만 상복은 별로 없었습니다. 1979년 데뷔하던해 받은 10대가수상을 빼고는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상을 연연하지 않고 자기 색깔을 내며 노래하는 심수봉만의 외골수도 상과 인연이 없는데 한 몫 했을지 모릅니다. 1997년 '백만송이 장미'가 골든 베스트가 될 정도로 그녀의 노래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곡중 하나가 바로 '그때 그 사람'입니다. 바로 심수봉의 노래는 우리네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시에 나오는 누님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서 선 이웃집 누이처럼, 어머니처럼 데뷔 30주년을 맞이하여 방송에서 좋은 모습, 좋은 노래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