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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딸은 새 핸드폰, 부모는 중고폰 쓰니

by 카푸리 2009.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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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쓰던 <가정환경조사서>에 피아노, TV와 함께 전화기 유무를 묻는 란이 있었는데, 그 당시 전화기 유무표시란에 '○'를 적은 친구들은 좀 산다는 집이었습니다. 급한 연락이라도 있을 때는 동네에 한대밖에 없던 쌀집으로 전화가 와서 쌀집 아들이 급히 달려와 전화 받으라도 뛰어오던 일이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제가 자랄 때의 전화기는 부의 상징이었고, 또 백색, 청색, 흑색전화기로 전화기조차 가격대별로 귀천이 있었습니다.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급한 밖에서 일을 볼 때 급한 전화를 위한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개나 소나'할 정도로 핸드폰 천국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핸드폰 안가진 학생이 없을 정도로 필수품이 되다보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딸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선물 대용으로 핸드폰을 사주었습니다. 친구들도 다 핸드폰이 있고, 문자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고, 또한 급할 때 연락 수단으로 사주었는데 비싼 요금은 차치하고라도 2년도 안돼 핸드폰을 신형으로 바꾸니 부모로서는 조금 아까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쓰는 핸드폰은 구입한지 너무 오래돼서 밧데리 수명이 완충을 해도 얼마 못가 방전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영업사원도 아니고 급한 연락용으로만 사용하니 그런대로 쓸만해 그냥 가지고 다녔습니다.


부모들은 핸드폰을 통화용으로만 쓰는데, 요즘 학생들은 주로 문자메시지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키판이 금방 망가집니다. 문자를 많이 보내기도 하지만 핸드폰을 제작할 때 청소년용은 특별히 키판 부분을 강화해서 제작해주면 핸드폰 수명이 더 오래갈텐데, 이런 세대별 특성을 무시하고 만들어서 학생들의 핸드폰 고장은 대부분이 키판 고장입니다. 2년 정도 사용하면 키판 뿐만 아니라 액정 등도 쉽게 망가져 핸드폰을 학생들의 핸드폰은 주기적으로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물론 딸의 경우도 문자도 많이 보내고, 액정을 통해 게임도 많이 해서 남들처럼 핸드폰 수명일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딸이 핸드폰이 자꾸 안들린다, 어쩐다 하면서 방학때 엄마에게 새 핸드폰을 사달라고 졸라댔습니다. 개학전에 사달라고 해서 지난 2월말에 신형 핸드폰을 사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딸이 쓰던 중고핸드폰이 남게되었는데, 대리점에 반납하면 3만원을 준다고 해서 아내가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쓰던 핸드폰은 구입한지 5년이 넘어 딸이 사용하던 핸드폰을 기기 이전을 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성능도 괜찮고 쓸만합니다. 무엇보다 쓰던 핸드폰에 비해 밧데리 수명이 오래가서 좋습니다. 딸이 쓰던 핸드폰이라 딸의 체취가 느껴져 정감마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에게 비싼 신형 핸드폰을 사주면서도 부모들은 자녀들이 쓰던 중고폰을 쓰니 세상 참 이상해졌습니다. 제가 자라던 때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래도 좋은 핸드폰을 자녀에게 쓰게 하고 싶은게 부모들의 마음인가 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 교육에 해가 된다며 아예 핸드폰조차 사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완고하게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부모가 더 많은 것은 세상이 그만큼 변했다는 것입니다.

딸을 보니 요즘 학생들은 핸드폰의 용도는 통화도 아니고 문자도 아니고 이젠 MP3용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 받아 핸드폰으로 듣고 있습니다.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부모들 세대와는 또 다릅니다. 디지털카메라 못지 않게 해상도가 큰 사진도 핸드폰으로 찍을 수 있어 핸드폰은 통화용보다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쓰입니다. 간신히 통화하고 문자 정도 보낼 수 있는 부모 세대와는 다릅니다.

딸에게 새 핸드폰을 사주고 중고핸드폰을 쓰는 제가 자식교육을 잘못 시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뜰하게 딸이 사용하던 핸드폰을 재활용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갑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부모보다 딸이 자기위주로 살아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합니다. 장유유서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고 좋은 것, 맛있는 것은 어른들에게 먼저 권하는 우리의 전통 예의범절은 이젠 20세기 교과서에나 나오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자식교육을 잘못 시키고 있는 저같은 팔불출 부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새 핸드폰을 들고 좋아하는 딸을 보니 그런 마음은 어느새 싹 가십니다.

딸이 쓰던 중고핸드폰을 쓰며, '자식교육'과 '자녀사랑'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돈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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